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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정당’ 자유한국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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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출산장려금 2000만원, 아동수당 초등생까지 월 30만원, 임산부 200만원 토탈케어카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달 초 이런 내용의 예산안 심의 방침을 내놨을 때 처음에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한때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씨의 황당 공약을 떠올리면서.

그런데 지난 9월 김 대표가 ‘출산 주도 성장’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걸 들고나온 사실을 기억하고는 가짜 뉴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우려는 지난달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복지위는 출산장려금 250만원, 아동수당 0~8세로 확대, 기초수급자에게 기초연금 10만원(기초생보제 생계비) 지급, 장애인연금 26만명 추가 지급 등에 합의했다. 연 4조원(지방비 포함)이 더 드는 ‘현금 복지’를 복지위 여야 간사가 합의했다. 회의록이나 속기록 같은 것도 없다. 그 흔한 토론회·연구용역도 거의 없었다. 자유한국당발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변신은 열흘 못 갔다.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한 예산에서 아동수당 확대 범위를 최대 84개월로 좁혀서 확정됐고, 나머지는 없던 일이 됐다. 한국당의 요구에 따라간 다른 정당도 문제지만 애초 잘못은 한국당에 있다. 한국당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복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무상보육·기초연금 등을 치고 나왔다. 그게 도움이 돼서 당선됐다고 판단하는지, 이번에는 한술 더 떠 ‘허경영식 수법’을 차용했다. 어느 누구도 ‘열흘 혼란’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보수의 가치는 안정 속의 개혁에 있다. 복지를 확대하되 현금 복지보다는 현물, 즉 돌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훨씬 낫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아이·노인 돌봄, 초등생 온종일 돌봄 구축, 신뢰할 만한 보육시설 확대, 간호·간병 등이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다. 스웨덴 같은 선진 복지국가가 그리한다. 현금 복지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줄이거나 물릴 수 없다. 차라리 가짜 뉴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돌봄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오는 게 보수 정당에 어울릴지 모른다.

하긴 지금 보수 정당들이 진정한 보수가 아닌데 뭘 더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런 정당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 국민이 안타깝기만 하다. 출산장려금 등의 백지화 관련 기사 댓글의 하나. “말은 참 쉽지. 없던 일로 하는 것도 참 쉽네. (중략) 국회의원 연봉 올리려 착각하지 말고.”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