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어에서 영어 없애자"|불어 고집하는 퀘백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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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캐나다의 언어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벡주의 불어고수 몸부림이 최근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퀘벡주 제1의 도시 몬트리올에서 6만 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주정부가 불어보호에 능동적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항의 데모였다.
영어를 몰아내자는 구호들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일부 극렬 퀘벡 분리주의자들은 묽은 단풍잎의 캐나다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작년 12월 퀘벡주 수상「로베르·부라사」는 옥외 상업표지판·간판 등에 영어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상점 내부에는 영어표기를 할 수 있는 절차 규정을 주정부가 마련할 수도 있다고 밝힘으로써 옥내 영어표기에 신축성을 남겨 두었었다.
이번 데모는 말하자면 옥내 영어표기도 묵과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부라사」수상은 데모 이틀 후 백화점등 대규모 상점 내에 불어이외의 표지판 게시를 금지한다는 결정을 표명했다.
전국 10개 주중 하나인 퀘벡의 이 같은 독자성 유지노력에 대해 다른 주는 극렬하지는 않지만 뿌리깊은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일부에서는 퀘벡 족에 대한 반감의 표현으로 영어를 동주의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청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형식상 캐나다는 영어·불어 두 언어를 공용어로 하고있다. 68년「트뤼도」수상정부 때 마련한「공용어법령」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두 언어사이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 언어세력은 작년 여름 연방정부수상「브라이언·멀로니」와 10개주 수상간에 서명된 소위 미치레이크 협정의 비준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대립상태에 있다.
이 협정의 쟁점은 연방정부가 퀘벡주를「특수한 사회」로 인정하고 중앙정부의 일부권한을 주 정부에 이양한 대목이다. 연방정부의 이 같은 양보는 연방헌법 82년 수정안을 퀘벡주가 서명하는데 대한 대가였으며「벌로니」로서는 영어·불어 사용세력간의 평행을 도모해 보자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이 협정이 발효되려면 내년6월까지 연방의회와 10개 주의회의 비준이 있어야하는데 2개주가 최근 유보자세로 돌아섰다. 거부 이유는 퀘벡주「부라사」수상의 언어정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협정이 퀘벡주의 독자성을 특별 대우하는 점만으로도 불공정한데「부라사」가 퀘벡 주내 소수파인 영어 사용주민을 박해하는 이상 이 협정에 서명할 수 없다는 게 마니오바주와 뉴브런즈왹주의 입장이다.
미치 레이크 협정 거부 움직임은 퀘벡주의 감정을 매우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 퀘벡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이 협정의 비준이 거부된다면 퀘벡은 더 이상 연방 내에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분리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퀘벡이 언젠가 분리·독립한다는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심지어 퀘벡 내부에서조차 많지 않다.
67년「드골」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퀘벡을 방문,『퀘벡 해방만세』를 외쳤을 때 이곳 사람들은 그를「어리석다」고 받아들였다.
퀘벡 사람들이 불필요한 감음과 부작용을 일으키면서까지 불어 보호를 외치는 것은 분리·독립이라는 적극적 동기보다는 언젠가는 영어세력에 휩쓸려 동화될지 모른다는 수세적 동기로 풀이된다.
캐나다 외무성의 한 공보관계자는『퀘벡주의 경제가 나쁠 때는 조용하다가도 형편이 좋아지면 세력확대 움직임들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요즘의 현상을 풀이했다.【몬트리율=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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