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 탓만 말고 정교한 수사했나 돌아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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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호 34면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 헌정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전 대법관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직후 나란히 기각됐다. 대법관에서 피의자로 전락, 법대에 앉은 후배 법관들에게 무죄와 불구속 수사를 호소했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인신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렇다고 직권남용 등 혐의가 벗겨진 것은 아니다. 현 단계까지의 검찰 수사로 볼 때 구속까지 할 필요성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정신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각각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로 증거가 많이 확보돼 있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적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각 사유는 두 전직 대법관과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간의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고 적시한 것이다. 두 부장판사 판단이 똑같았다. 이른바 ‘사법 농단’ 프레임 속에서 이번 사태를 ‘업무상 상하 관계에 따른 조직적 범죄’라고 규정한 검찰의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결국 직권남용 혐의 자체가 애매하고 모호한 데다 피의자들간의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는 의미다.

이번 영장 기각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이 “방탄 판결”“면죄부”라며 판사들을 공격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비합리적이다. 영장전담재판부에 최근 투입된 임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는 박수를 쳤을 것 아닌가. 검찰이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게 법이고 상식”이라거나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反)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 규명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상황 역시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더러 앞뒤가 맞지 않다. 만약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을 반드시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명백한 증거를 확보해 영장을 재청구하면 될 일이다. 영장을 기각한 법관 만을 탓하기에 앞서 보다 정교하고 정치한 수사로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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