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2044년 기어이 3차대전 터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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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태양와 별의 궤도를 특정하는 우주시계는 지상의 우리네 삶처럼 지금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인류의 미래사'는 앞으로 200년 동안 펼쳐질 인류의 오디세이를 앞당겨 보여준다.

인류의 미래사 (원제: A Short History of the Future)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교양인, 476쪽, 1만8000원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도로 남이 되는~". 대중가요 '도로 남'식의 말장난을 학문에서 실천한 이가 있다.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토마스 모어가 만든 용어'유토피아'의 꼬리를 살짝 비틀어봤다. 유토피스틱스(utopistics). 유토피아학쯤 될까. 그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라는 사회과학자의 시도인데, 뉘앙스는 완전히 판이하다.

"단순한 말장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유토피아의 진짜 문제는 그게 이 땅에는 존재할 수 없는 천상의 꿈이라는 점이다. (…) 내가 대체 용어로 고안해낸 유토피스틱스라는 단어의 취지와 전혀 다르다. 유토피스틱스는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에 대한 판단 행위다."('유토피스틱스' 11쪽, 창비사, 1999)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이란 부제가 달린 '인류의 미래사'는 '천상의 꿈' 유토피아가 아니라 '대안의 역사' 유토피스틱스를 다룬 책이다. 그것도 정면에서. 따라서 달콤한, 그러나 공허할 수 밖에 없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외면해도 좋다. 자, 그러나 당신이 이 책에 필이 꽂혔다면, 축하부터 드린다. 즐거운 지적 노동의 결과가 뿌듯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년 뒤인 2026년 유엔의 전면 개편이 단행된다. '지구국가연합'. 이것이 지금도 진행 중인 세계화 물결의 최종 완결편이다. 그건 다국적 기업들의 입김 아래 몇몇 나라가 저개발국 신탁통치에 나서기로 합의한 오스트리아 '빈 체제' 성립(2008년)의 결과다. 이 '지구주식회사'는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태평양공동체 6개국 사이의 블록별 관할 지배 시스템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독자에게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하나씩 등장한다. 우선 한국은 2030년쯤 세계 6대 강국에 진입한다. 한국이 포함된 G6는 세계 총생산의 89%를 차지하는 지구촌 공룡이다. 나쁜 뉴스? 그 직후 불어닥친 대공황에 이어 파국이 닥친다는 것이다. 2044년 제3차 세계대전 발발. 3차 대전은 자본주의 폭주기관차의 모순 때문인데, 하필 미국의 빈 체제 이탈 선언으로 시작된다.

한 세대 뒤의 미국은 지금의 제국이 아니라 '이빨 빠진 골리앗(201쪽)' 정도로 묘사된다. 인종문제 심화와 함께 부의 재분배를 단행하지 않으면 내전으로 풍비박산이 날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빈 체제 탈퇴를 감행한다. 위기 상황에서 G6 정상들이 이끄는 지구국가연합이 대미 선제공격에 나선다. 군사 목표물을 향해 발사된 리튬 폭탄의 결과는 참담했다. 개전 1년 만에 지구인 70%가 절명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치는 국지전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스토리는 23세기를 코 앞에 두고 역사학자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무릎 이야기' 방식으로 진행된다. 6대에 걸친 가족사라는 틀 속에 "그랬단다" "하렴" 등의 구어체로 전개된다. 역사의 뼈대(거시사) 말고도 인간의 피와 살(미시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미덕이다. 전체 12개 장의 사이를 장식한 '간주곡'에는 그 시기를 살았던 이들의 편지.일기.소송기록 등이 나온다.

3차 대전 중 리튬폭탄을 떨어뜨렸던 공군 장교의 자살, 환경 오염에 분노하는 여성 시인의 절절한 목소리까지…. 평양 시민 윤석미라는 똑똑한 여성의 신념에 찬 육성도 만날 수 있다. 윤석미는 '작은 당(독일 녹색당과 비슷한 생태주의와 공동체 이념 당)'이 통치하는 22세기 말이야말로 유토피아라고 단언한다. 어쨌거나 대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과학사에서 지성사까지 포괄하는 이 미래서가 주는 교훈은 음미해볼 만하다.

누구나 '지금 여기'에 코 박고 사는데, 가끔 고개 들어 멀리 보게끔 만드는 자극제 역할 말이다.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새삼스런 책임감에 때론 정신이 번쩍 난다. 그건 좋다. 문제는 바탕에 깔린 서구 중심주의 시각이 좀 께름하다. 책의 바탕에 깔린 여성.생태.공동체주의 모두 좋은 얘기지만, 그것들이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의 틀 속에서만 거론된다.

거론되는 주요 이념도 자본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 셋 뿐이다. 탈(脫)근대를 말하면서 서구 모더니즘의 틀에 갇혀있는 꼴이다. 그런 고정관념과 함께 과도한 단순화에서 오는 무리함이 눈에 뜨이지만, 허황한 꿈은 전혀 없어 마음에 든다. 즉 미래는 저 높은 신성(神性)으로 올라가 구름처럼 떠다니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는 인식이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자기실현을 담은 이 책은 대표성이 충분하다. 89년 초판본을 개정한 99년판을 번역한 이 책은 미국 대학의 필독서. 미래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몇 해 전 작고한 저자는 뉴욕주립대 빙엄턴대 교수였고 앨빈 토플러 급의 미래학자로 꼽힌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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