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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마을서 축구장 20여개 규모 호숫물 모두 빼낸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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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보균자가 익사한 호수의 물을 빼는 인도 후발리 지역 관계자. [힌두스탄타임스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에이즈 보균자가 익사한 호수의 물을 빼는 인도 후발리 지역 관계자. [힌두스탄타임스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인도의 한 마을에서 축구장 20여개 규모의 호숫물을 모두 교체하는 일이 발생했다. 에이즈 환자의 시신이 호수에서 발견되자 주민들이 물이 오염됐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들은 이 호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간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인도 현지언론은 남부 카르나타카 주 후발리 시 인근 마을 모라브에서 대형 호수의 물을 모두 빼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6일 보도했다.

호수 크기는 14만6000㎡, 축구장 20여개 규모로 주민들은 20개의 긴 튜브와 펌프 4대를 동원해 작업 중이다. 물을 완전히 빼는 데만 5일 이상 걸리고, 또 물을 다시 채우기 위해 4∼5일이 필요하다고 매체는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 에이즈 보균자가 이 호수에 빠져 숨졌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식수로 사용하던 호숫물이 오염됐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1000여명이 되는 주민들은 지난달 말부터 2∼3㎞ 떨어진 수로에 가서 물을 구하는 상황이다. 주민 무탄나 바바이카티는 "호수에서 시신을 발견했을 때 부패 상태가 심했다"며 "우리는 오염된 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 당국은 에이즈 균이 물을 통해 퍼지지 않는다며 수질 테스트까지 하겠다고 주민 설득에 나섰지만, 효과가 없자 결국 '물 교체'라는 방법을 동원하게 됐다.

현지 언론들은 인도 주민들의 무리한 결정에 대해 "전통적으로 '오염된 것'에 민감한 인도에서 호수 위에 에이즈 보균자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사 전공인 델리대의 공영수 박사는 "힌두교 신앙에서는 정(淨)한 것과 부정(不淨)한 것이 확실히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 입장에서는 그 호수의 물을 마시면 위생적 오염뿐 아니라 영적으로 부정하게 돼 힌두교도의 정체성까지 오염될 수 있다고 두려워할 수 있다"면서 "이런 사고 체계에 에이즈에 대한 오해까지 더해져 이번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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