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증언 내 락이 급전 실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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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 정면대결까지도 예상케 했던 중간평가 문제가 노태우 대통령의 3·20특별담화로 일단 고비를 넘겼습니다. 정면대결 신임투표니, 단순정책평가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다시 사실상 취소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니 어리둥절한 느낌입니다.
-노 대통령이 그 같은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용기와 아이디어를 제공받게 된 계기는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의 지난7일 회담이었고, 상당히 구체화된 내용을 가지고 막후절충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수령이 된 게 김대중평민당총재와의 회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대중 총재와의 회담직후 청와대 발표는 소극적인 반면 김 총재의 발표는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혼선을 빚기도 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날의 발표 내용들이 3·20담화의 큰골간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노-김대중회담에서 모든 것이 결말지어졌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때 결심이 섰다면 그 이후 국민투표추진 움직임이 모두 속임수고 책략 이였다고 봐야 하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노 대통령이 회담직후 민정당 당직자들이나 검사장들에게 국민투표에 대비토록 지시한 것이나 그 다음날부터 최창윤 정무수석을 실무반장으로 하는 팀이 구성된 것, 그리고 매일 지방에서 올라오는 2천∼3천여 명에게 청와대를 개방하고 홍보책자를 나누어준 것 등을 보면 국민투표강행의사가 적지 않았다고 보여져요.
화·전 두 가지 방책을 동시에 밀고 나갔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랬던 청와대 쪽의 분위기가 반전을 하게 된 시기는 대체로 지난 주말 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김영삼 총재의 태백유세분위기나 전민련 등 재야단체의 투쟁본부결성 움직임이 그 같은 반전의 분위기를 가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죠.
-최근 노 대통령이 만난 각계인사의 상당수가 파국을 막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중간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16일 밤 있었던 역대 정치학회 회장단과의 만찬 자리에서는 Y교수가 중간평가를 하게 되면 이 나라는 군부와 좌경세력만이 극한대결을 하는 형국이 될 것이라며 아주 강력하게 호소했다는 후문입니다.
-그 Y교수는 지난14일 평민당 총재실로 김 총재를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이상수 대변인은『훗날 김 총재의 노력이 알려질 것』이라고 하더군요.
-정국을 파국 없이 끌고 가자는 것이 노 대통령이나 야당총재들의 생각이었는데 이를 위한 가시적 조건들이 나타났다고 봐야지요.
-제주도에 갔을 때 김창근 교통장관이 1차 대전고사를 얘기했답니다. 당시 열강의 지도자들은 꼭 전쟁까지는 생각 안 했었는데 아래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군대가 동원되고 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대전으로 끌려 들어가게 됐다는 거죠. 노 대통령이 그 얘기를 듣곤『김 장관 말이 맞아』하더래요.
-문제는 가시적 조건이 무어냐는 건데 전두환 전대통령이 국회출석 증언키로 한 게 반전의 실마리가 됐다는 게 유력한 해석 이예요.
-알려진 바로는 김윤환 민정당 총무가 지난 16, 17일 사이에 백담사를 방문해 전씨로부터 국회출석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전씨는 연희 동을 떠난 이후 문제가 복잡해진 것을 지적했지만 국회증언에 선선히 동의한 것 같아요. 사태수습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죠. 이 전씨 동의가 밑거름이 되어 여-야간 절충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전씨 증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오면 평민당과 공화당도 곤란했을 거고 할 수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을지 몰라요. 민정당도 파국을 막고 싶었고 타협노선으로 흘러간 평민·공화당도 성사가 되길 바랐지요. 김원기 평민·김용채 공화 두 총무가 김윤환 총무를 잡고 뭔가 내놓으라고 필사적으로 다그쳤대요.
-결국 노 대통령과 김 총재의 청와대 회담을 민정·평민·공화당의 3김 총무가 구체적으로 성사시켰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민주당만 뒷전에 밀린 셈인데 민주당 측과도 상당한 속 얘기는 있었다는 것 같아요. 그것이 김영삼 총재나 당내 강경 원외세력에게 잘 먹혀들진 못했지만…민주당이 관망자세로 나온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보여져요.
-여-야의 상호양보가 이번 중간평가문제를 결말짓는데 주효했다고 할 수 있지만 여권내의 복잡한 파워게임이 결과적으로 중평국민투표흐름을 돌리는데 기여를 했다는 가설(?)도 있어요.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철언 특보가 남북문제 등을 걸어 중간평가를 할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남북관계개선이 여의치 않자 오히려 중평반대입장으로 돌아서게 됐고 반대로 당내 강경 보수 세력이나 이종찬 사무총장 측의 조기실시 정면돌파 론이 득세했죠. 3·20담화는 박 특보 쪽의 협상 론이 다시 기세를 얻은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어요.
-야당 내에도 현상의 변화를 노리는 쪽이 신임 국민투표를 밀었죠. 민주당경우가 대표적 예입니다.
-중평취소를 그 같은 파워게임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경제적 측면 또한 강하게 반영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최근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지금 중간평가를 하게 되면 경제가 아주 어려워 질 것이라는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국민투표를 하면 5천억∼7천억 원이 드는데 물가는 오르고 수출은 둔화되어 가고 있고 각종노사분규로 기업의 투자심리마저 위축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간평가를 하게 되면 우리 경제는 소생이 불가능해진다고 진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중평을 향해 마주보고 달리던 여-야의 두 열차가 정면충돌은 가까스로 피했고 이제 초점은 다시 전-최씨 증언·6인 핵심인사처리 등 후속조치에 쏠리고 있습니다.
두 전직대통령의 증언문제는 곧 여야간에 구체적 절차가 논의될 겁니다. 국회에서 질문서를 미리 보내면 전씨가 국회에 나와 비공개로 답변서를 낭독하는 선에서 절충이 되고 있답니다.
-최씨 측이 완강하니까 우선 전씨 증언부터 들어간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야당 측의 요구 선이 크게 완화돼 있어 곧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른바5공·광주관련 6인 핵심인사 처리는 아무리 보아도 간단치가 않아요.
-여야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큰 것 같아요. 어느 야당총무는『정호용·이원조 의원은 금 배지를 떼고 이상재·허문도씨는 구속되는 걸로 되었다』고 공공연히 흘리고 있는데 여당 쪽은 펄쩍 뛰고….
-여-야간 막후협상에서 뭔가 있었다는 추측도 있고요. 여하튼 온갖 소문이 나돌아다녀요.
-사실 여권내부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사정이 복잡해요. 이원조 의원은 대한선주문제로 고발돼 있으니 그에 따라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 의원 건은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어요.
-핵심인물처리에 고심하고 있는 여권고위인사들은 김용갑 장관의 사퇴에 의미심장한 해석을 붙이고 있어요. 김 장관이 살 신의 모범을 보였다는 식이죠.
-하지만 여권사정이 간단치 않아서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데 불과하고「공식적으로」정 의원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없어요.
-여야협상문제로는 지자제도 있지 않습니까.『지자제선거로「중평」을 대체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은데요.
-관건은 자치단체장 선거인데 노-김대중회담에서「광주시장선거」를 짰다(?)는 밀약설에 김 총재는 펄쩍 뛰고 있습니다.
-「3·20」담화가 나오자마자 정부·여당에서는 당정개편얘기가 흘러나왔는데 가능성은 희박한 것 아닙니까.
-휴일인 19일 저녁 노 대통령 주재의 청와대당정회의에서 박준규 대표위원이 후속조치의 일환으로「당정개편」을 거론했다는 것이고 실제로 몇몇 당직자들은 개편을 각오하는 표정이었죠. 그러나 한 고위당직자는『노 대통령이 당정개편에 소극적인 것 같더라』고 전해 조속한 개편은 없을 듯 싶습니다.
-개편은 없더라도 ▲노 대통령이 좀더 바짝 챙길 거라는 얘기는 많습니다. 대충 첫 번째 작품이「공권력확립」으로 나타날 것 같은데 중평연기에 불만을 품고 있는 강경 론 자·정면돌파론 자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을 테고….
-김윤환 민정총무는 좌경세력에 대해선 엄격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대 좌경전면전」을 암시했죠.
-중평연기를 만들어 낸 여-야 대 타협은 앞으로 여권과 3야당 등 정치권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의 파장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다소 성급하지만「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아요. 그 동안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김대중총재가 온건한 비 투쟁 타협노선을 시범적으로(?) 보여준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죠.
-야 3당의 공조체제유지 여부도 관심거리죠. 평민·공화는 토라진 민주당을 달래 우선 3김 회담을 갖고 중평이전의 협력체제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직 민주당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어요.
-청와대와 민정당은 중평연기로 한시름은 놓았지만『고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분위기예요. 위상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데다 어찌 보면 노 대통령은 더 허약하게 보일 수 있고 민정당은 더욱 어려운 궁지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완전히 놀아난 꼴이 됐으니….
-이제 4당 체제는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야죠. 여당도 독주할 수 없고 어쨌든 야당도 원만한 국정운영의 책임을 공유하게 된 셈이니까 중평이후 여소야대 제2기를 맞아 각 정당간의 막후정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그런 기대 속에서 당장 연정이니 연립내각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노-김대중회담 때 노 대통령이 경제각료나 노동장관을 평민당이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다는 말도 있고요.
-나올 가능성이 많지요. 대 타협정국이 이뤄질지 관심입니다. <정리=이연홍·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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