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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갔다하는 대형 국책사업 '천성산 터널 사태' 교훈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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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구~부산 간 경부고속철도 2단계 공사는 원래 2004년에 착공하여 2010년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2006년 가덕 신항만 건설에 맞추어 2002년 7월로 착공을 앞당겼다. 하지만 노무현 대선 후보는 2002년 12월 천성산 터널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노선 재검토를 지시하였다. 이 밖에도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대형 국책 사업 중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 개통, 새만금 간척사업 지속 여부 등 많은 사업에 대해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경부고속철도 건설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천성산의 원효터널 굴착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6월 2일 원래 노선대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2단계 공사가 완료되면 기존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것보다 44분이 빨라져 우리나라의 물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율 스님의 단식 등으로 예정보다 4년 이상 늦게 공사가 시작되어 2조5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 국책 사업은 현 정부가 집권하기 전에 이미 적절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검토하게 된다면 주무 부서에서 어떻게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으며, 해당 기업이 그동안 입은 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선 후보가 본인의 신념이든 표를 의식한 것이든 나름대로 공약을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실천 가능성과 효용성, 새롭게 제기될 파장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국익 차원에서 공약을 재검토하고 목표를 수정하여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 했고, 예상치 못한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국책 사업은 국가 경제의 활성화와 국민의 생활 편익 때문에 환경 훼손을 감수하면서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들이다. 그런데 소수의 반발 때문에 사업 추진을 재검토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다수의 국민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였다.

대통령의 대형 국책 사업 재검토 결정은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이익집단을 고무시켜 취임 3년 동안 반대 시위와 사업 추진에 대한 제소가 줄을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대법원이 원안대로 최종 판결을 내리고, 양자가 이에 승복하여 사업을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갈등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졌고, 경제적 손실은 엄청났다. 원안대로 추진할 일이었는데, 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하여 검토하는 척했다면 이는 정말 국가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장관이나 국무총리.대통령은 그 분야의 업무를 책임지고 추진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들이다. 이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그만큼 결정해야 될 일들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적절한 절차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한 뒤에는 소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계획대로 국책 사업을 추진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세금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송호열 서원대 교수·지리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