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취소 선언" 일단 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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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관계자들 연금 극비보안>
중간평가 무기연기가 최종 결정된 19일 정부와 민정당은 노태우 대통령이 제주 순시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오후2시 쫌부터 잇단 당정회의를 갖는 등 숨가쁜 움직임.
노 대통령은 김재순 국회의장·이일규 대법원장·강영훈 총리 등 3부 요인과 박준규 민정당대표위원을 초 치, 청와대 만찬을 함께 하며 처음으로 결심을 밝힌 데 이어 관계장관·당5역·청와대 비서 팀을 불러 담화문발표에 따른 대책을 논의.
이와 별도로 핵심당정멤버들은 이날오전 궁정동 안가회의를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3∼4차례의 구수 회의를 갖고 담화문내용을 최종 손질했으며 국민투표실시를 대비해 구성한 당 중간평가 중앙대책위 홍보대책본부(본부장 심명보 의원)도 밤10시 긴급회동, 무기연기에 따른 대 국민설득 등 기존구도와는 정반대의 홍보 대책을 숙의.
지도부는 관계자들을 삼청동안가 및 호텔 등에 연금 하다시피 했고 철통 함구령이 내려졌다. 이종찬 사무총장·김윤환 총무 등은 아예 시내 호텔에서 잠을 잤고 박 대표도 호텔을 전전하다 자정을 넘긴 뒤 귀가, 기자들을 따돌렸으며 다른 당직자들도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 담화를 지켜보자』『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딴전을 피우는 등 철저한 보안작전.
이 때문에 각 언론사로「대통령 담화문발표가 20일 오전에 있을 것」이란 통보가 있자 이는 곧 국민투표공고를 뜻하는 것이며 아울러 날짜를 꼽아 보고는 4월7일이 투표일이 될 것이란 추측이 한때 기정사실처럼 돼 버리는 등 혼선.

<제주서 최종결심 굳힌 듯>
담화문발표가 있은 20일 오전에도 여권은 노태우 대통령주재의 청와대 고위당정 조찬회의, 민정당 의원·지구당위원장회의 및 청와대 오찬회의 등 배경설명과 사후대책회의로 부산. 호텔신라에서 잠을 잔 김윤환 총무는 오전7시 3야 총무들을 호텔에서 만나 대통령의 담화문안을 전달하고 배경을 설명.
김 총무는『학원 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서울지하철파업 등 노사분규양상도 심각할 뿐 아니라 국민경제도 어려운 입장에 놓여 현 상태에서의 국민투표는 엄청난 대결을 낳고 결과적으로 국가위난에 빠질 수 도 있어 최종 결단케 된 것』이라고 노 대통령의 결단배경을 설명. 김 총무는『대한변협도 지적했듯 중간평가를 국민투표형식으로 실시하게 되면 끝난 뒤엔 합헌성문제가 또다시 정치쟁점으로 남게 되는데 그렇다면 실시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국민투표를 재고하게 된 계기였다』면서『실시해도 실익이 없는데 국가적 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소개.
김 총무는『이제 중간평가문제는 정리됐으니 지자제 실시에 따른 대야협상을 본격화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지자제 문제를 정치쟁점화해 나갈 것임을 시사.
노 대통령의 결심과 관련, 한 고위당직자는『김종필·김대중 총재 등과 영수회담을 가질 때부터 대통령의 마음 한구석엔 안하고 넘어가는 방향을 염두에 두었고 지난주 김영삼 총재의 태백·횡성 유세와 서울지하철파업, 특히 주말 평민·민주당의 유세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면서『최종 마음의 정리를 하게 되기는 제주에 묵으면서』라고 귀띔.

<"김 빠졌다" 일부 볼멘소리>
노 대통령의 3·20결정에 대해 박준규 대표위원을 비롯한 민정당 지도부는『정국안정을 의한 통치차원의 결단』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시하는 반면 신임국민투표로 여소야대 정국의 국면전환을 기대했던 대부분의 평의원들과 원외 지구당위원장, 그리고 사무처요원들은『김 빠졌다』며 불만 섞인 표정. 당사에 돌아온 박 대표는『3∼4일전부터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며『당내에 강성발언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대로 정국을 몰고 가면 상처뿐인 영광만이 남고 파국이 예상된 만큼 이번 결정은 대통령의 믿음성과 용기가 돋보이는 것』이라고 찬양.
중집 위원들은 겉으로는『야당과 대 타협을 이뤄 냈으니 바람직한 일』이라는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깊숙한 소감의 피력은 회피하려는 모습이었는데 그 동안 신임연계 정면돌파를 주장했던 한 관계자는『모든 점을 고려한 신중한 결단이겠지만 국민들에게 이러한 것이 어떻게 비쳐질지…』라고 말해 불만의 일단을 표명. 그 동안 국민투표비중에 박차를 가해 온 한 사무처간부는『차제에 야당과 일전을 겨뤄 당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다소 허탈하다』며『이제부터 연기배경을 홍보해야 할 판』이라고 다소 볼멘소리.

<불안감 씻어 흡족한 표정>
야3당은 이번 조처에 대해『노 대통령이 사실상 중간평가공약을 거두어들인 것』으로 한결같이 진단.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20일 중평이 무기 연기되자「연기」를 주창한 자신의 의사대로 정국의 매듭이 풀린 데 대해 매우 흡족한 표정. 사실 평민당은 노-김대중 회담이전부터 외형적으로는「5공 청산과 민주화 없는 중간평가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중평자체에 대한 불요론을 굳혀 왔는데 노-김 회담에서의「정면대결회피」합의에도 불구, 민정당 측의 신임연계주장에 불안감을 느껴 왔던 형편.
한 고위소식통도『청와대합의에도 불구하고 민정당 측에서 조기신임 연계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자 여권에 은밀히 알아보니「정부가 평민당총재와 약속한 것을 어길 수 있느냐」는 말을 해 왔다』고 전언.
김 총재는 20일 아침 동교동 자택에서『이제부터 중요한 것은5공 청산과 민주화, 연내 일부 자치단체장직선 등』이라며『청와대 회담이후 어려운 시련을 겪었는데 다행히 이렇게 됐다』고 만족.

<"편법포기 여론에 굴복">
「노 정권 퇴진」을 앞서 주도해 왔던 민주당은『5공 청산 없는 정면돌파의 무모함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최형우 총무) 라는 첫 반응.
중간평가의 무기연기를『국민여론에 굴복한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노 대통령이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데는 민주당의 정 공법적 접근자세가 결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자평.
황병태 정책의장은『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중간평가를「편법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상기시키고『청와대·민정당 측이 노-김대중·김종필 회담을 통해「우회 공략」을 꾀했지만 명분을 선 점한 우리당의 자세에 한계를 느껴 포기한 것』이라는 분석.
민주당은「야당 공조정신」을 내팽개친 것이라는 비판 속에 대여, 대 평민·공화 채널을 폐쇄하다시피 한 채 상당히 구체적인 불신임운동 전략을 모색.
민주당은 이 같은 공세에 대한 여권의 전략선회가능성을 지난주 중간부터 감지하기 시작,『민정당이 발톱을 숨기려는 것 같다』『여론조사에서 밀린다는 판단을 민정당이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여권의 움직임을 주시. 그러나 딱 부러진 여권의 자세천명이 없어 정면대결채비에 박차. 이에 대해 김 총재측근은『청와대와 민정당의 입장이 미묘해 우리측에 구체적인 어떤 신호는 없었다』고 설명했으나 김 총재는 19일 낮 여권이 중평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감을 느꼈다고 일부인사들에게 토로.

<"현명한 선택" 환영성명>
공화당은 19일 두 차례에 걸쳐 민정당 측과 총무접촉을 통해 노 대통령의 결심을 전달받고 환영하는 분위기.
김용채 총무는『지난 18일 이미 그런 분위기가 감지됐다』며『모두 강 경으로 나설 때 실망하지 않고 협상노력을 계속해 온 우리당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자찬.
공화당은 20일 아침 총재기자회견을 통해 중간평가를 하지 말라는 입장을 천명할 예정이었으나 여권의 입장전환에 따라 간담회로 전환하고『노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을 매우 환영한다』고 발표.
김종필 총재는 이날 아침 당직자들과 TV를 통해 노 대통령의 발표를 들은 뒤『신임을 연계하라는 등 강성으로 밀어붙여야 대통령의 위상을 세울 수 있다는 등 강경 주장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라며『그러나 이러한 대결국면을 회피한 노 대통령의 결단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논평. <허남진·박보균·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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