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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감독 필요없다면서 선임···정운찬 실언 아이러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야구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임감독 필요없다"는 총재가 감독 임명 #인물보다 새 감독의 정통성과 권위 걱정 #대회별 감독 전환이 순리였으나 무산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7일 이사간담회를 열고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 전임(專任) 감독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4일에는 선동열 대표팀 감독이 “제가 사퇴하는 것이 총재의 뜻에 부합한다”며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앞서 정운찬(71) KBO 총재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적으로는 대표팀 전임 감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데 따른 사퇴였다.

그러나 KBO는 내년 11월 프리미어12 대회와 내후년 7월 도쿄올림픽을 치르려면 전임 감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KBO는 조만간 구성되는 기술위원회가 감독 후보군을 1차적으로 선정할 예정이다. 여기에 KBO가 내·외부 의견을 모아 후보들을 확정한다.

최종 임명권자는 정운찬 총재다. 새로 선임될 감독은 “전임 감독이 필요 없다”고 말한 정운찬 총재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것이다. 모양새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10월 23일 국감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는 정운찬 KBO 총재. 양광삼 기자

10월 23일 국감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는 정운찬 KBO 총재. 양광삼 기자

야구계에서는 몇몇 감독 후보군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중요한 건 인물이 아니라 새 감독의 정통성 확보다. 정 총재의 국감 발언 탓에 누가 감독이 되더라도 권위를 갖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동열 전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론의 비판을 받을 때부터 대표팀 감독을 노리는 야구인들이 몇몇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와 맞물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10일 선동열 전 감독을 국감에 불러 세웠다. 손혜원 의원이 왜 그토록 호통을 쳐가며 감독의 사퇴를 요구했는지 의문도 증폭됐다.

10월 23일 국감에서 정운찬 총재는 “스타 출신 감독이 지도자로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특정 감독의 이름과 경력을 상당히 길게 설명했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정운찬 총재가 바라는 감독상이 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정운찬 총재는 국감에서 잇단 실언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한 야구인은 “많은 야구인들이 정 총재의 국감 발언에 매우 실망했다. KBO의 수장으로서 야구인을 보호하고, 부당한 공격에 당당히 맞서야 했다”며 “동시에 누가 후임 감독이 될지 모두들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 손혜원 의원과 정운찬 총재의 문답이 결국 선동열 전 감독을 밀어낸 것이기 때문에 빈 자리에 누가 앉을지 관심이 쏠린다는 것이다.

교수 시절부터 야구팬(두산팬)임을 자처한 정운찬 총재 주변에는 ‘총재 측근’을 참칭(僭稱)하는 야구인들이 있다. 이들 중 새 감독이 나온다면 ‘낙하산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선임 과정부터 쉽지 않고, 선임 후에도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지 의문이다.

전임 감독제는 야구계의 숙원이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위업을 달성했던 김인식 감독이 그해 소속팀 한화 이글스의 부진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뒤 프로구단 감독들의 대표팀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 현역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길 꺼려하자 전년도 우승팀 감독에게 반강제적으로 맡겨졌다. 2015 프리미어12, 2017 WBC 때는 현역 감독들이 모두 거부해 김인식 기술위원장이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정운찬 총재가 국감에서 전임 감독제의 필요성을 부정했기에 대회별 감독을 선임하는 게 순리로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운찬 총재가 전·현직 프로팀 감독들을 찾아가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전임 감독제 유지를 결정했다. 정 총재의 소신은 그저 소신으로만 남았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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