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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평가「신임」걸어야 합니다"|사표 던진 김용갑 전 총무처 단독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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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4일 돌연 사표를 던지고 잠적, 중간평가정국에 파문을 일으켰던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이 4일 만인 17일 아침 다시 나타났다. 강남의 P호텔에서 어떤 인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김 전 장관을 추적 끝에 잠시 만났다.
-장관직 사퇴성명에서도 일부 밝히셨지만 돌연 사퇴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입니까. 『지난 1년 동안 날로 심화되어 온 좌경세력의 확산에 대해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장관직사퇴를 결심했습니다. 이번 중간평가는 제도권내의 여-야 대결문제로 보지 않고 좌경세력과의 대결로 생각합니다. 만약 중간평가에서 실패하면 결국은 좌경세력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는 후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중간평가는 과거의 국민투표와는 달리 민주화 발전을 계속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역전되느냐라는 국가의 존망문제가 걸려 있다는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과도 상의 안 해>
-사퇴하기 전에 누구와 협의하신 적이 있습니까. 일부에서는「군심」을 대변한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제 성격을 잘 아시지만 누구를 대변할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진퇴문제를 누구와 사전에 협의한다는 것은 결국 사퇴할 의사가 없거나 박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들한테 조차도 협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퇴 결심 전에 평소부터 잘 아는 군의 선배나 후배, 그리고 잘 아는 교수·언론인들과 접촉한 결과 우리사회의 좌경화현상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특히 민주화과정에서 생겨난 역작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는 것을 보고 동감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내 한 몸을 던져서라도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막상 사퇴결심은 언제 했습니까.
『며칠 전부터 심각하게 생각해 보다 14일 아침 출근하는 차 속에서 결심을 굳혔습니다』
-극적인 장관사퇴를 보고 일부에서는 공인의 입장에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먼저 의사를 밝혀야 도리인줄 압니다만…(잠시 생각) 그러나 노 대통령께서 저와의 특별한 인간관계 때문에 저의 진짜 속마음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 누를 끼친 게 아닌가 하여 죄송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해를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곧 실시될 중간평가에 대한 본인의 소신은 무엇입니까. 신임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 같은데…. 여권내부가 이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작년 8월 이른바 소신발언이후 줄곧 중간평가를 통해 좌경화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놓고 국민의 선택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만나는 사람에게 강조해 왔습니다. 대통령과 만날 때마다 시국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고 2월10일에는 종합적인 건의까지 했습니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이번 중간평가는 단순한 정책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현 시국을) 위기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결심은 대통령이 하시겠지만 신임을 걸어야 한다고 봅니다.』
-걱정하시는 우리 사회의 좌경실체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며칠 전 기자간담회에서도 밝혔습니다만 지난 1년간은 좌경세력들의 천국이었습니다. 평양에서 주장하는 정치선전이 일부 운동권학생들과 재야세력들의 입을 통해 그대로 옮겨지고, 심지어 김일성 우상화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신임 건의>
반 외세 자주화·반 파쇼민주화·민족통일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내용들입니까. 좌경세력은 양적·질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팽창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서건 이런 현상을 제지하는 곳이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폭력만 사용하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하는 상태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폭력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철모르는 일부 동조자들이고 진짜 핵심뿌리는 지하에 잠복해 있습니다. 좌경세력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연 날릴 때 실을 계속 풀어만 주다가 다시 감으려면 줄이 끊어지는 법입니다. 더 이상 실기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중간평가만 잘되면 앞으로 시국은 잘 수습되리라고 보십니까.
『중간평가에 신임을 걸어 노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임기 4년간 국민을 더 이상 불안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간평가를 통해 국민욕구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평가를 통해 정치안정을 이룩해 국민불안을 해소시키고 좌경세력을 차단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며 국민욕구를 조절해 진정한 민주화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잠적하신 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친구 아파트에 주로 있었습니다. 서울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총리가 계속 만나려고 했었는데….

<공부나 계속 해야 죠.>
『그동안 두 차례 통화만 했습니다. 막상 만나게 되면 결심도 흔들릴 수 있고 해서 사표가 수리되기 전까지는 일체 공인으로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은 중간평가를 위해 사람도 만나고 설득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국민투표가 끝나면 조용히 쉬면서 중단했던 공부나 계속하지요.』
-끝으로 공직을 떠나면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늘의 위기사항에 처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벽돌 한 장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됩니다. 중간평가에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수 있도록,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기자와 만난 1시간동안 자신의 모든 소신을 거침없이 말하는 김 전 장관은『지난 1년 동안 총무처장관으로서 많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며『행정개혁과 공무원 처우개선 등 어려운 문제를 후임자에게 떠맡기고 떠나게 되어 미안한 감이 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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