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무처 장관 돌연 사퇴의 배경|정국운영「우익」불만 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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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용갑 총무처장관의 14일 돌연한 장관직 사퇴는 중간평가 정국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 같다.
김 장관이 사퇴 성명에서 밝혔듯이 중간평가를 좌경세력 척결과 정국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여권 내 정면 돌파 론이 12일 청와대 당정회의에서 결정한 정책평가에 의한 우회통과 방침에 제동을 걸 수도 있고 이것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본인이 성명서 외에 사퇴배경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이 홀연히 잠적해 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본심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 동안의 그의 언행과 최근 형성된 여권의 분위기로 인해 진짜 이유에 대한 추측이 구구하다.

<여 나약에 비관적>
우선 그의 사퇴결심에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동기가 분석되고 있다.
첫째는 여소야대 정국아래서 그동안 여권이 대처해 온 정국 운영방식에 대해 김 장관이 강경·우익들의 의사를 대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점이다.
김 장관은 평소 여권이 나약하게 끌려가는 듯한 상황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중간평가에 대해 『나라의 장래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밝히고 멋지게 국민에게 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정면 돌파 론을 정부 내에서 앞장서 주장하고 청와대를 비롯한 민정당 일각에서 추진한 야권과 타협에 의한 정책평가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중간평가를 야당과 타협으로 우회 통과해야 한다는 청와대 핵심참모들에게 적지 않은 불만을 가졌었고 노 대통령이 결국 우회 통과 론을 채택하자 몸을 던져서라도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그의 독특한 기질이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김 장관은 그동안 노 대통령에게 확고한 충성심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의 시국 인식이 너무 안이하지 않는가, 또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비롯, 중요국사를 일부 참모들의 의견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가 하는 여권내의 불만에 비교적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이번 중간평가 문제까지 결국 대통령이 일부 참모의 의견을 택하자 충격요법의 필요성을 더 더욱 절감했을 것이란 점이다.
사실 최근 여권 내에는 대통령의 일부 핵심참모에 반대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왔고 김 장관과 평소 친하게 지낸 이춘구 의원· 최병렬 문공장관·현홍주 법제처장 등 노 대통령 취임 준비 위 팀과 이종찬 민정당 사무총장 그룹이 그런 점에서 관심을 끌어왔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중간평가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여권강경파의 주장과 불만이 김 장관의 사퇴를 계기로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군심」대변 가능성>
김 장관은 지난해 8월13일 이른바 우익체제 수호발언 파동이후 시간 있을 때마다 좌경세력의 확산을 경고하고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살신성인할 것을 다짐해 왔으며 따라서 이번 사태파동이 중간 평가방식에 대한 불만보다는 좌경대처에 대한 경각심제고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특히 육사 17기 출신으로 평소 군의 핵심간부들과 두터운 친교를 맺고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김 장관이 현 시국에 대한 간접적 압력을 이들로부터 받고 이른바「군심」을 대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가 군과 똑같은 각을 가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평소 우익보수세력의 기수역할을 자임했던 점으로 미루어 범 우익세력의 단합을 이번 중간평가에서 실현하자면 자신이 희생이 되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장관은 지난해 8월13일 기자회견 때도『좌경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는 마당에 우익 쪽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여권의 무력감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서는 장관직을 희생할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공언한바 있다.

<사표 받아들일 듯>
김 장관의 장관직 사퇴는 일단 청와대 쪽에서 반려할 뜻을 보였지만 현재 형성되고 있는 중간평가 정국의 미묘한 분위기에 비춰 볼 때 결국은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러나 김 장관을 잘 알고 평소 가까이 지낸 이춘구 의원이나 최병렬 문공장관은 김 장관의 사퇴동기가 노 대통령에 대한 반항이 아니며 좌경문제에 대한 비장한 각오를 보임으로써 중간평가에서 노 대통령을 도우려는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장관은 5공 청산과 좌경척결이 중간평가의 중심이슈가 될 경우「5공 인물」인 자신이 사라지면서 좌경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노 대통령을 진심으로 돕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 장관은 중간평가보다 중간평가 이후의 정국을 더 걱정하고 거기에 대비한 여권의 대책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지금은 정권적 차원이 아니라 체제붕괴의 위기에 있다는 인식을 노 대통령부터 가져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아무튼 김 장관의 사퇴는 본인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중간평가 정국에 여러 각도에서 미묘한 영향을 미칠 변수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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