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민 김승하씨 '대표팀을 맞이하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곳이 이렇게 떠들썩한 적이 있었던가. 쾰른공항의 입국 게이트 앞은 온통 붉은빛이다.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 소리를 느껴 본다. 게이트 앞에 홀로 서서, 나는 왜 이렇게 흥분하고 있을까. 저 문은 내 젊은 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

"글뤽 아우프!(Glueck auf!)" 행운을 빈다는 독일 말이지만 사실은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이다. 석탄 더미를 캐기 위해 컴컴한 갱구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글뤽 아우프"를 외쳤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들,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당당한 그 모습에서 석탄 가루에 뒤덮인 우리의 젊은 날을 볼 수 없다. 그들이 독일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든 나는 이미 충분히 그대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40년 전 우리는 종살이를 하러 가는 막내아들의 기분으로 독일 땅을 밟았다. 우리는 컴컴한 막장에 우리의 젊음을 묻고 도이치 마르크를 캐어내 고국으로 부쳤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은 이미 승리자로서 독일에 왔다. 전 대회의 개최국이자 폴란드.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의 축구 강호들을 모조리 혼내주고 독일과 결승 진출을 다툰 세계적인 강팀이다.

차범근이 독일에 와서 펄펄 날고, 내가 사는 레버쿠젠에 와 서유럽축구연맹(UEFA)컵을 제패하면서 레버쿠젠의 자랑이 됐을 때, 나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레버쿠젠의 홈구장인 바이아레나 구단사무실 앞에 가장 크게 걸린 차붐의 사진을 보면,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지만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공항에 내린 태극 전사들을 환영하는 지금 내 기분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온 젊음을 바쳐 개미처럼 일했지만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 선수들은 분명한 꿈을 이루려고 왔다. 그들의 꿈이자 대한민국의 꿈이고 우리의 꿈이다. 환영 나온 인파 속에 선명하게 빛나는 태극기, 그리고 플래카드들.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자 외쳤다. "헤르즐리히 빌코멘!(Herzlich Willkommen!)"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쾰른공항에서 만난 레버쿠젠 교민 김승하(61.사진)씨. 그는 1973년 독일에 광부로 온 사람이다. 환영 인파 속에 독일 땅을 밟은 태극 전사를 보면서 그는 독일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동시에 봤다.

63년의 한국은 실업률 8.1%,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이었다. 가난한 분단국가의 젊은이들은 일할 곳이 없었다. 그해 12월 27일. 243명의 광부가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들은 독일의 루르 지역으로 파견돼 지하 1000m, 온도가 40도까지 치솟는 막장에서 중노동을 했다. 당시 월급은 600마르크(160달러)였다. 77년까지 8000여 명의 광부가 독일로 갔다.

김씨는 77년부터 레버쿠젠에서 살고 있다. 바이엘 회사에 다니며 81년 결혼한 간호사 출신의 아내 김종해(60)씨와 아들 대근(23)씨가 있다. 다른 한국인처럼, 김씨도 자녀 교육에 힘썼고 아들은 아헨공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김씨는 "독일에 살면서 남은 꿈이라면 아들 잘되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것뿐이죠. 이번 월드컵에서 4년 전의 성적을 올려 주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쾰른=허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