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실전논술] 인류의 보편성과 민족의 개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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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보편의 세계성과 민족 또는 지역의 개별성 사이에는 긴장 갈등 관계가 존재하지만 양자가 상호배타적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은 좋은 논술 소재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간 자유무역협정(FTA) 제2차 협상 모습. [중앙포토]

출전 : (가) 강만길, '꽃은 그 나름의 빛과 향기를 지닐 때 가장 아름답다' : (나) 마서 누스바움, '애국주의와 세계주의'

제시문 해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인류 보편의 세계성'과 '민족 또는 지역의 개별성'을 대비시키면서 양자의 관계를 논한다. 동시에 그 둘 사이의 긴장.갈등 관계를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양자가 상호 배타적일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제시문 (가)는 지역문화나 민족문화가 한 지역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교류할 때 보다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소위 문화의 국제화나 세계화를 통해 선진 자본주의 강대국의 문화로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세계 모든 민족사회의 문화가 그 나름의 다양한 특징을 지니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제시문 (나)는 '세계시민사상'이라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지역성에 근거한 애국심 같은 정서는 기본적으로 우연의 결과이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선.이성.도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글의 강조점은 서로 다르다. (가)는 주로 개별성에 역점을 두면서 획일화와 예속화를 피하는 길을 찾고 있다. 반면 (나)는 보편성을 지향하면서 모든 국가적.문화적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상을 추구하자고 한다.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하면서, 학생들은 ▶영어 공용화▶한.미 자유무역협정▶대중문화 개방▶스크린쿼터 논란▶인터넷을 통한 지구촌의 형성▶조기 유학 문제▶미국의 샐러드 문화와 용광로 문화 등 여러 측면의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논의를 진행한다면 좋겠다. 자칫 논의가 공허해지기 쉬울 때 구체적 사례는 힘 있는 글을 만들어 준다.

학생 글 - 홍준기(인천 삼삼고 3)

(1) 인간은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가치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인정되는 보편적인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이성과 도덕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보편성은 통합의 형태로 나타난다. 근대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계층사회는 상위계층에게만 인간의 존엄성이 주어졌다. 그러나 하부계층은 선거를 통해 상위계층과 통합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이렇게 통합된 국가는 또 다른 국가와의 통합을 위해 세계화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보편성을 통해 인간의 존중을 추구하는 통합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진행 과정 속에 불합리한 면들이 있었다.

(2) (가)는 세계화가 획일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각 국가들의 개별성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의 열강들은 문호 개방을 통한 국가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약소국가의 여러 가지 이권을 취했었다. 보편화가 추구하는 도덕과 이성 외에 다른 가치가 개입함으로써 진정한 세계화의 의의가 퇴색된 것이다. 또 열강들의 문화와 경제체제를 약소국들에 도입한 것은 그 국가들 고유의 문화를 열강들의 문화와 같이 획일화시키고, 그들의 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별적인 요인이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그러나 보편화가 문제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공동체가 이성과 도덕을 포함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 발달로 인한 보편화는 하위계층들에게도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세계 국가들끼리의 통합 추구는 다른 국가들에게까지 보편성을 추구함으로써 인권이 존중되지 못하고 있는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갖는 여러 국가들의 태도가 그 예이다.

(4) 따라서 바람직한 보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보편화는 개별적인 구성요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개별성이 무시되었을 때 보편성도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다수에게 유익한 보편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복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리고 민족적인 개별성만을 중요시하는 것은 나치 정권과 같이 보편적인 가치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한다.

(5) 많은 국가들이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부터 이루어져 온 통합이 완벽하지는 않았으며 과정 속에 많은 오류가 있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개별성의 존중은 세계화로 나타나는 보편성을 더욱 완성시켜 줄 것이다. 개별성과 보편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 될 것이다.

민족 개별성이 갖는 위험성 예시 돋보여

총평·첨삭 이번 문제는 복합적인 내용을 묻고 있어서, 물음에 대한 답변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내용을 채우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학생들이 요구사항을 충실히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많은 학생이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독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우수답안으로 선정한 홍준기 학생은 개중 문제의 요구사항에 충실하게 답했다. 구성이 무난한 것이, 문단 (2)와 (3)에서 각각 제시문 (가)와 (나)의 내용을 활용했고 내용도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교수가 제시문을 줄 때 얼마나 이해했는지 역시도 묻고 있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적절한 분량의 요약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문단 (4)와 (5)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민족 개별성이 '나치' 같은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 점은 아주 좋다. 그렇지만 앞의 문제 해설에서 지적한 것 같은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한 점은 보완해야 하겠다. 동시에 이런 점 때문에 요구 분량에 훨씬 못 미치게 되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하겠다.

구체적으로 보존해야 할 개별성과 보편성, 그리고 경계해야 할 개별성과 보편성의 측면이 어떤 것인지 글 속에 서술했다면 훨씬 풍요롭고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개별성만이 보편화가 될 수 있다'는 혜광고 정영화 학생의 표현 같은 내용이 담기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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