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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휘청대는 서울대 총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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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대 총학생회의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올 4월 "한총련 탈퇴"를 내건 비운동권 황라열(29.종교학과 4년)씨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총학 집행부와 운동권이 주류인 단과대 학생회장들과의 대립구도는 예견됐었다. 하지만 요즘 불거지는 양측의 잡음을 지켜보면 젊은 학생들의 치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민망한 구석이 많다.

먼저 불씨를 던진 곳은 황씨다. 황씨는 선거유세 기간 자신이 고려대 의예과에 입학한 적이 있으며, 한 시사주간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황씨는 최근 의혹이 제기되자 "고려대에 합격한 것은 사실이나 등록을 하지 않아 '입학'한 적은 없으며, 시사주간지에서도 수습기자가 아니라 기고문 요청을 받아 글을 쓴 사실만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일반 선거에서라면 '경력 부풀리기'는 당선 무효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운동권의 독선을 비판하면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공약을 내건 황씨였기에 학내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기다렸다는 듯 운동권에선 황씨를 상대로 8일 청문회까지 개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번엔 운동권 학생들이 학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총학생회의 최고 의결기구인 총운영위원회에서 평택 시위에 참여했다 다친 학생들의 치료비를 학생회비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비운동권인 총학 집행부는 치료비 지원에 반대했다. 하지만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밀어붙였다. 총학 게시판 등엔 "학생회비가 불법시위자 의료보험비냐"고 꼬집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의료비 지원을 결정한 단과대 학생회장 중 두 명이 그 대상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눈총을 사고 있다. 한 사회대생은 "어떻게 학생회 간부들이 학생들의 동의도 없이 자기 밥그릇부터 챙기느냐"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황씨나 운동권을 바라보는 학내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서울대 학생회는 투표율 미달로 두 번이나 투표가 무산되는 소동을 겪으며 가까스로 구성됐다. 일련의 사태를 보는 일반 학생들은 "운동권이나 비운동권이나 다 마찬가지"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도대체 대학에 학생회가 왜 필요한지 따져 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김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