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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문제, 대타협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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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란 핵문제가 갈수록 불안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란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데는 이슬람권의 헤게모니를 쥐고 국제사회에서 수퍼파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열망이 깔려 있다. 현재 이란은 중동의 권력 판도에서 이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특히 테헤란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함께 레바논.시리아.이라크를 모두 활용하려 한다.

중동지역의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이란의 의지와 결합된 핵개발 야망은 극도로 위험하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폭탄을 획득하거나 생산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자신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란 핵무기는 유럽의 안보에도 위협이다. 독일.영국.프랑스는 2년 전부터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테헤란과 협상해 왔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을 보면서 이란의 지도자들은 서방세계가 이란의 선의에 기댈 정도로 약해진 것은 물론, 고유가는 서방으로 하여금 이란과 심각한 대결을 두려워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란 정권의 이러한 분석은 위험할 뿐 아니라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란의 핵개발은 조만간 '뜨거운' 대결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갈등의 핵심은 누가 중동을 지배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란인가, 아니면 미국인가. 내가 보기에는 이란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의 폭발성과, 핵개발을 막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 만약 미국이 유럽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그리고 비동맹 국가들인 77그룹의 협조를 얻어 이란에 '대타협(Grand Bargain)' 방안을 제시한다면 아직 외교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남아 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동결하는 대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아래 원자력 연구와 기술 개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만일 테헤란이 이 같은 제안을 거부하면 이란의 리더십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짐작하건대 앞으로 협상은 꿈꾸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서방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이란을 경제.재정.기술.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란의 선택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서방의 인정(recognition)과 안보를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완벽한 고립을 택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서방이 이러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란의 원유와 가스 가격 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란이 핵강국으로 등극하느냐, 혹은 이것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쓰느냐 하는 두 가지 다른 옵션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고유가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서방-이란의 군사적 대치가 몰고올 끔찍한 상황, 그리고 이란의 핵무장이라는 결과를 염두에 둔다면 미국도 협상 시나리오 없는 강경책을 밀어붙이거나 과거처럼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미국은 객관적이면서도 침착한 리더십을 발휘, 이란과의 협상을 단호하면서도 조화롭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협상이 성공하면 적절한 보장을 약속해야 한다. 모름지기 핵문제처럼 중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신뢰와 도덕성이 중요한 법이다. 미국과 이란의 '대타협'은 국제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킬 것은 물론 이란에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방안은 미국이 책임감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요슈카 피셔 독일 전 외무부 장관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