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인도판 이튼 스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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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용 인재 사관학교라는 소리를 듣는 인도의 둔 스쿨 전경. 강도 높은 수업과 힘든 환경을 견디는 수업 방식으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인도의 한 사립학교가 미국에서 뜨고 있다. 스타르타식 교육으로 길러낸 인재들이 뉴욕의 월가를 비롯한 주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한 개 면을 할애해 "둔(Doon)이라는 인도 사립학교 출신들이 미국 사회에서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71년 전통의 이 학교는 전교생이 500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곳 졸업생들은 씨티그룹.메릴린치.골드먼삭스와 같은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를 비롯해 유력 컨설팅 회사 매킨지, 방위산업체 레이시언 등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35년 수도 뉴델리에서 북동쪽으로 224㎞ 떨어진 주민 70만 명인 도시 데라둔에 문을 연 이 학교는 인도 내에선 이미 유명하다. 여러 유명 정치인과 문학가.기업인을 길러낸 대표적인 엘리트 양성소다. 그래서 '인도판 이튼 스쿨'로 불리기도 한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를 비롯해 인도의 대표적 작가인 시크람 세스도 이곳 출신이다. 과거엔 명문가나 부호들의 자제들만 받아줬으나 요즘은 가난한 수재들도 받아준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엄격하고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교육방식이다. 한마디로 스파르타식이다. 재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절식(節食)을 강조하는 것도 스파르타인과 비슷하다. 겨울에도 일절 난방을 하지 않아 학생들은 추위를 견뎌내며 공부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허용되지 않으며, 학교 측에선 부모들의 방문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오전 6시15분 기상으로 시작된다. 20분간 군대훈련 같은 운동을 한 뒤 아침 식사 전에 두 과목 수업을 한다. 식사 후 다시 다섯 과목이 기다린다. 일반 교과 외에 음악.시.연극도 필수 과목으로 돼 있다. 또 공인회계사(CPA) 수준의 회계시험도 치러야 한다. 매년 4월이면 단체 체조 경기도 벌인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을 통해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일이다.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은 성적에 따라 교복을 달리 입히는 것. 학업 성적이나 운동 실력이 뛰어난 학생에겐 회색 교복 대신 검은색이나 군청색 재킷을 입게 해 대접을 달리한다.

이 학교 졸업생으로 현재 매킨지 뉴욕사무소 책임자로 있는 비크람 말호트라(47)는 "학교에서 혹독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 덕택에 월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500명의 남학생이 똑같은 제복을 입은 상황에서 공부를 빼어나게 하거나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지급되는 특별한 재킷으로 뻐기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학교가 최근 미국에서 각광받는 것은 졸업생들의 월가 진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둔의 새로운 전략과 맞물려 있다. 그동안 국내 지도자 육성을 목표로 삼던 이 학교는 몇 년 전부터 세계로 눈을 돌려 외국 유학과 글로벌 기업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그 결과 3~4년 전 30% 선에 그쳤던 영미 대학 진학률이 지난해엔 80%로 높아졌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 스파르타식 교육=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에서 행해진 엄격한 군국주의적.금욕적 교육방식을 말한다. 용맹심.애국심.인내심을 가진 강한 체력의 군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공공 교육기관에서 7세 이상의 건강한 남자 아이들을 모아 합숙교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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