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치않은 무임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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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지하철노조가 무기한 「무임승차」라는 편법의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또 부분 파업에 이어 7, 8일 중에 전면 파업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 가결되면 시기와 방법을 노조집행부에 일임키로 했다.
서울시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하철노조는 작년 6월에도 지하철을 세워 수도권 교통을 한바탕 마비시켰던 것을 비롯해 벌써 여섯 차례나 파업예고, 부분파업·한시 파업 등을 되풀이 해왔다. 이번 파업도 작년 9월의 파업위기로부터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지하철 노조로서는 굳이 그렇게 해야할 내부사정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민 입장에서 보면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파업은 노측이 사측과의 협상 과 교섭에서 인내와 노력을 다 하고도 안될 때 사용하는 마지막 대항 수단이다. 대화와 협상으로는 타협이 도저히 불가능하고 파업을 하지 않으면 노측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계상황에서만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도 거치지 않은 파업은 노조의 횡포고 직장 파괴행위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지하철노조는 서울시 지하철공사가 작년 말부터 협의를 위한 대화를 줄곧 제의해 왔으나 궁극적인 책임이 어느 편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노조측이 대화는커녕 단 한차례의 대면에 조차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러져 있다. 작년 10월 노사 쌍방이 합의한 8시간 근무형태 변경과 보수제도개선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 협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연기만 해오다 새 위원장 취임 후 곧 바로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지하철은 세우지 않되, 요금은 받지 않는 방식의 부분파업도 이해할 수 없다. 지하철을 운행함으로써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모면하고 지하철공사만 골탕먹이자는 속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선량한 시민을 공짜손님으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며 자기 직장에 대한 배임·해사행위다. 더구나 지하철은 서울시민의 재산이고 2조원이 넘는 빚도 앞으로 시민들이 갚아 나가야할 부채다.
해마다 1천8백억 원씩 빚을 갚자면 하루 4억 여 원의 지하철요금수입으로도 모자라 요금 인상까지 검토되는 어려운 판국에 직장에 손해를 주는 것은 결국 시민 전체에 엉뚱한 부담을 기는 결과가 된다.
그뿐 아니라 요금을 고의로 안 받고 그냥 태워주는 것은 회사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는 것과 같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모든 집단 행동이 그러하지만 법과 질서는 지켜야하고 절차의 합법성과 요구의 정당성은 물론, 투쟁 또한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지하철노조는 그 어느 것도 갖추거나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 지하철공사직원이라는 준 공무원의 신분으로 시민 교통의 공적책무를 맡은 노조원들이 굳이 탈법과 극한으로 치달아야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협상이 결렬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은 대화에 응하는 자세라도 보여야할 것이다.
그동안의 경위야 어떠했던 간에 지하철 공사 측 도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해야한다. 평소에 직원교육과 노무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분쟁이 끊이질 않고 늘 시민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끼치는지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변태적 지하철 파업이라는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한 가닥 밝은 광경을 보고있다. 절반이상의 승객은 스스로 승차권을 사서 승차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이 설사 무임 출입구가 열려있더라도 승차권을 사는 품위를 보여 수준 높은 자율성과 성숙된 시민의식이 과시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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