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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비정규직보호법, 되레 전체 고용 줄고 용역직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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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법이 전체 고용 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용역·도급직의 고용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의도와 다른 비정규직보호법의 부작용을 해소하려면 정규직의 근로조건 유연화와 같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KDI의 진단이다.

지난달 이어 또 노동개혁 주문 #“근로조건 경직성 완화할 필요”

KDI가 19일 내놓은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7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법 규제 대상인 기간제·파견직을 많이 채용했던 회사들은 전체 고용 규모를 축소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기간제 근무자 등을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토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법 시행 이전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이 다른 기업보다 10%포인트 높으면 전체 고용 규모를 3.2% 줄였다는 게 KDI의 설명이다. 비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정규직 고용 규모는 11.5% 늘렸다. 하지만 용역·도급직 고용도 10.1% 늘어났다. 박우람 KDI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용역·도급직 고용을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KDI는 또 50인 이상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사용규제에 대한 대응을 조사한 결과 “근로조건 변경이 어렵다고 느끼는 기업일수록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사용자가 인식하는 근로조건 변경의 어려움(0~10점)이 1점 증가하면, 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은 2.8%포인트 감소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정규직보다 기타 비정규직 증가가 주로 관찰됐고, 무노조 사업장은 정규직 증가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KDI는 “노조가 있는 기업이 근로조건 변경을 더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하려는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는 데 대해 KDI는 “그동안 비정규직 정책이 주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법으로 제시한 게 ‘근로조건 경직성 완화’다. 박윤수 KDI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보호 수준은 거의 ‘0’인데 정규직이 되면 (보호 수준이) 상당히 올라간다”며 “정규직 보호 수준을 완화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동 유연성 강화=쉬운 채용·해고’라는 등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쉬운 해고요건 같은 전통적인 노동 유연성 개념을) 임금·근로시간 같은 근로조건으로 확장해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고용 안정성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 유연성을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KDI가 이런 주장을 제기한 건 처음이 아니다. KDI는 지난달 ‘2014년 이후 실업률 상승에 대한 요인 분석’ 보고서를 통해 실업문제 완화를 위해 “대기업 및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경직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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