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익률 50%의 힘 … 한국도 행동주의 투자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시장의 새로운 기준(new normal).’

한진에 도전장 내민 KCGI 비롯 #경영참여 선언 펀드·운용사 등장 #칼 아이칸, 엘리엇 등 외국계 일색 #국내 행동주의 투자 형태에 변화 #주주환원 쪽으로 정부 정책 전환 #“한국, 성장 잠재력 큰 시장” 평가

주주 행동주의 전문 연구기관인 ‘액티비스트 인사이트’가 ‘2018년 연간 보고서’에서 평가한 행동주의 펀드 시장의 현재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하이에나’ ‘기업 사냥꾼’ 등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의 기류는 완전히 달라졌다.

행동주의 펀드로 대표되는 주주 행동주의 투자(shareholder activist investment) 바람이 한국에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토종 펀드와 자산운용사가 속속 등장하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사모펀드인 KCGI는 지난 15일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진칼 지분 9% 보유 사실을 밝히면서 한진그룹에 도전장을 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신생 자산운용사인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이 맥쿼리인프라펀드(MKIF)의 운용권을 놓고 호주계 맥쿼리자산운용사와 한판 대결을 겨뤘다. ‘SK 대 칼 아이칸’ ‘삼성·현대차그룹 대 엘리엇’ 등 ‘외국계 대형 펀드 대 국내 대기업’ 일색이었던 국내 행동주의 투자 형태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행동주의 투자는 말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투자 방식이다. 기업 지분을 사들여 일정 정도의 세력을 구축한 뒤 배당 확대, 경영진 교체, 분할 매각과 합병 등 투자 기업의 경영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를 통해 해당 기업의 지분 가치를 올린 뒤 지분 매도 등을 통해 차익을 내는 걸 목적으로 한다.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275개였던 전 세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수는 올 상반기 524개로 급증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타깃으로 삼은 시가총액 100억 달러(약 11조3000억원) 이상 초대형 기업 수도 2013년 115개에서 지난해 167개로 늘었다.

성장의 비결은 높은 수익률에 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현재까지 행동주의 펀드가 세계 각지에 투자한 기업의 평균 수익률(투자 종료 기준)은 50%를 넘어섰다.

한국은 행동주의 펀드 수나 펀드가 목표물로 삼는 기업 수 등에서 순위권(액티비스트 인사이트 조사, 국가별 1~20위) 밖이지만 성장 잠재력은 큰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시행 등 주주 환원 중심으로 정부 정책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상장사의 평균 배당 성향은 약 16%로 일본(34%)이나 중국(30%) 등에 비해서도 아직 크게 낮다.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는 지금 투자하면 차익을 남길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정재훈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 낮은 배당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었는데 행동주의 투자로 대주주가 배당을 늘리고, 지분 가치 방어에 나선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급성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라임 데모크라시’를 출시한 라임자산운용의 원종준 대표는 “해외에서는 공제회, 재단 등 기관투자가의 행동주의 투자가 활발하지만 한국은 ‘기업 사냥꾼’이란 인식 때문인지 국내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부진하다”며 “해외에선 주류 투자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국내의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동참하기가 어렵다. 대다수 행동주의 펀드는 비공개 사모펀드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 특성상 투자기간이 평균 3~5년 이상으로 긴 데다 운용전략이 복잡해 개인이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갈수록 세가 불어나는 행동주의 투자로부터 기업을 지킬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아니라 단기 차익을 거둔 뒤 지분을 도로 파는 형태라 기업의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도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지배권을 보장하는 차등의결권 등 방어 수단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현숙·염지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