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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뺨치는 군무의 향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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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30면

ⓒPhotographer B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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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하여가’에서 대취타를 썼듯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갑니다.”

국립무용단 신작 ‘가무악칠채’

국립무용단의 공연 ‘가무악칠채’(11월 22~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출연하는 무용수 송설의 말이다. ‘가무악칠채’는 국립무용단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무용수 이재화의 첫 안무작으로, 한국무용에서 이제껏 사용한 적 없는 ‘칠채’라는 장단으로 과감한 음악적 도전에 나섰다.

사실 완전한 신작은 아니다. 지난 시즌 시작된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을 통해 개발되어 3월에 30분짜리로 초연됐던 작품이다. 그런데 당시 함께 공연된 세 작품 중 독보적인 호응을 얻어 이번에 2배 분량의 확장판으로 제작됐다. 유명 안무가의 권위와 명성에 기대지 않고 평단원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 명실상부한 ‘국립 레퍼토리’ 자격으로 단독 공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유명 안무가나 타장르 예술가 등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한국무용의 틀을 깨는 시도를 해온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차원의 도전이 첫 결실을 맺은 셈이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무용가들을 재료삼아 현대무용의 문법으로 동시대성을 추구해온 숱한 시도들이 혁신적 무대를 만들어왔지만, 그런 무대를 보며 ‘한국무용이란 게 뭘까’ ‘한국적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가무악칠채’의 미덕은 한국춤의 호흡과 한국음악의 깊이를 모르는 외국인이나 현대무용가가 결코 넘볼 수 없는, ‘한국무용가만의 영역’을 개척한 점이다. 단순한 전통춤 재해석이 아니라 통상 무용에 쓰이지 않는 장단에 우리 춤사위를 얹어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한국춤을 확장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난해하거나 지나치게 실험적인 무대도 아니다. 통상 ‘정중동’의 미학으로 통하는 한국무용의 틀을 깨고 록콘서트에 비할 만큼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한 매력을 극대화한 젊고 세련된 무대다.
이재화는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국립무용단이 협업했던 ‘시간의 나이’ 파리 공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무용수가 악기까지 다루는 한국무용을 외국인들이 경이로워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전통의 매력인 ‘가무악일체’를 테마 삼고 제목까지 따왔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가·무·악을 다 하는 무대는 아니다. 음악·무용·소리 전문가가 모여 ‘칠채’라는 소재를 변형하고 실험하는 컨셉트다. ‘칠채’란 농악에서 행진에 쓰이는 빠르고 현란한 가락으로,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친다는 뜻이다.

‘가무악칠채’는 칠채의 무한 변주를 펼친다는 점에서 ‘칠채 볼레로’라 할 만 하다. 푸른빛 조명이 지배하는 무대에 붉은 수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칠채’ 장단을 수놓는다. 농악을 이끄는 것이 ‘상쇠’라면, 이 무대의 상쇠는 이재화와 소리꾼 김준수다. 이재화가 루프스테이션을 이용해 직접 칠채 장단을 만들고, 김준수가 칠채 장단을 재담으로 이끌어가며 시작한 리듬놀이에 무용수들이 하나둘 끼어든다. 분명 한국적 DNA가 뚜렷한 전통 춤사위지만 빨라졌다 느려졌다 완급 조절의 베리에이션이 반복되며 무대에 독특한 에너지를 더해간다.

음악도 타악기 리듬으로 시작해 점차 생황과 해금·기타·피리 등의 선율이 더해지고, 소리꾼의 구음까지 가세된다. 헤비메탈의 사이키델릭한 음향으로 절정을 이루는 ‘칠채’의 막판 클라이맥스 장면은 단연 압권으로, 온 신경을 집중할 가치가 있다. 일곱 명의 무용수가 펼쳐내는, BTS의 그것 뺨치는 역동적인 군무의 향연이 한국 춤사위로 얼마나 세련된 안무가 가능한지 온몸으로 입증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할나위없이 한국적이되 지금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반영한 안무와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공연은 초연보다도 구조적 완결성을 지향했다니 더욱 궁금해진다. ‘칠채’가 등장하기 전의 프리퀄 장면이 추가되는 등 전체적으로 좀 더 풍성한 구성으로 확장된 형태의 ‘가무악’을 통해 ‘칠채’라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할 예정이란다. 거기서 우리는 또 한번 한국춤이 가보지 않은 미래를 목격하게 될 것 같다. 현대무용과의 경계가 흐려지는 추세에서 위협받고 있는 정통 한국무용의 존재 의의까지 새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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