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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지금이 북한에 귤 보낼 때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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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에 귤 200t을 보낸다는 정부 발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금이 그럴 때냐는 의문 때문이다.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했던 터라 이에 대해 답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매사에는 때가 있다. 작금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둘러보면 또다시 얼어붙을 기미가 역력하다. 지난 8일 열기로 했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갑자기 연기된 뒤 지루한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예정됐던 회담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는커녕 미 트럼프 행정부는 연일 대북 압박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9일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례 없는 외교·경제적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미·중 외교·안보 대화 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유엔 제재 이행을 위한 중국의 협력은 비핵화 이슈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진핑 정권의 협조를 촉구했다.

이에 맞선 북한 측 반응도 날카롭기 짝이 없다. 북한 입장을 대변해온 일본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미국이 ‘속도 조절론’을 주장하면서 현상 유지를 선호하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글을 실었다. 북·미 간 긴장의 수위가 확연히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귤을 보내면 그렇지 않아도 우려되는 한·미 간 불협화음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쪽 방문이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한라산 헬기장을 점검하겠다는 제주도 측 방침도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달 중 처리가 예상되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등을 둘러싸고도 남북, 북·미 간 대립이 거세질 공산이 크다. 이런 만큼 북한과의 교류 등도 상황을 봐가며 조심스레 추진하는 게 옳다. 뜬금없이 저질렀다간 동티 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