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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in] 전통공예 기술 잇따라 맥이 끊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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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70여 년간 명주를 짜온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조옥이씨(85)는 고령으로 작업을 중단했다. 집 툇마루에 놓인 조씨의 베틀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다.

일본 도쿄 우에노에는 전통 의상인 기모노만 파는 백화점이 있다. 한국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인간 국보'의 작품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도쿄에는 컴퓨터 디자인 설계시스템(CAD)을 갖춘 3년 과정의 '오다 기모노 전문학교'도 있다. 장 폴 고티에(프랑스), 안나 수이(미국) 같은 유명 디자이너를 비롯해 기모노를 만들어 일본 시장에 내놓는 외국 브랜드만 30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정은 어떨까. 상당수 전통 공예 분야가 후계자를 찾지 못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서민들의 뛰어난 창의력이 배어 있어 가장 순수한 한국적 미와 특성을 표현하는 분야"라는 공예의 운명을 짚어봤다.

탐사기획부문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우리나라 전통 한선(韓船) 방식으로 만든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대승을 거뒀다. 한선이 소나무를 쓰고 바닥이 평평한 반면 일본 배는 삼나무.전나무를 쓰고 밑이 뾰족했다. 단단하고 전복 위험이 적은 조선 수군의 배는 암초가 많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한국 바다에 적합했다. 한선을 주로 만들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던 박정옥씨는 그러나 1994년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박씨의 손기술은 대가 끊겼다.

16년 전 조씨가 한창 작업을 할 당시 모습.

전승이 단절된 기예는 이뿐 아니다. 망자의 영혼을 싣고 마지막 이승 길을 넘던 상여. 지금은 전통 상여를 만들 이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경북 영양군에서 상여를 제작해와 1988년 국내 유일의 '상여장(喪輿匠.도 무형문화재)'으로 지정됐던 김재환씨.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인 2004년 2월 상여장은 무형문화재 목록에서 빠졌다. "대를 이어 만들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유지됐을 거예요. 김씨가 홀로 지켜오던 분야라…."(경북도 문화재과 진동성 사무관)

경기 수원시의 대목장(大木匠.전통 건축물 무늬 조각), 경북 김천시의 모필장(毛筆匠.붓), 경남 진주시의 연관장(煙管匠.담뱃대) 등도 장인이 후계자 없이 숨진 경우다.

국가가 지정한 '중요 무형문화재' 공예 종목은 46개. 이중 맥을 이을 사람이 뚜렷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일정 수준에 오르지 못해 지난해 '전승 취약'으로 분류된 종목이 40%(18개)에 이른다. 금속활자.명주.소반.발.기와 등 문화적 상징성이 큰 분야가 대부분이다.

취재팀은 시.도 무형문화재 1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절반 가량(47%)은 "내 대나 다음 대에 기술의 맥이 끊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작업량이 과거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는 응답도 56%나 됐다.

# 작업에서 손 놓는 장인들

충남 서천군에서 베틀 부품인 '바디'를 만들어온 구진갑(90.중요 무형문화재)씨는 몇 해 전부터 작업을 중단하고 서울 딸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령인데다 부인과 사별 후 숙식을 해결하기 어려워서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촘촘하게 일렬로 배열해 만드는 바디는 그 정밀도가 옷감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 하지만 구씨가 손을 놓으면서 기능은 사장되다시피 했다. 기술을 익힌 마을 청년은 현재 다른 일을 한다.

"이걸 혀서 밥먹고 살게 해준다믄 배울 사람이 있겄지유. 종일 방에 앉아 일하다 일어서믄 머리가 빙 돌 정도니 자석덜도 하겠다고 안허고…."(구씨)

길쌈 마을로 이름난 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 조옥이(85)씨의 집 툇마루에는 베틀이 놓여있었다. 14대 째 이어온 명주짜기로 1988년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 조씨. 그러나 그의 베틀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베틀질을 하는 게 힘들어진 조씨는 지난 2월 실제 작업에서 손을 뗀 이들에게 지정하는 명예보유자가 됐다. 조씨의 후계자는 일흔을 넘긴 막내 동서 이규종씨.

"여름 되면 버스 대절해 구경오는 사람도 많은데 계속해야 안되겠습니꺼. 며느리가 배우는 중이지만 (길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예."(이씨)

공예 장인들의 작업이 곳곳에서 중단되고 있다. 충남 서천군의 한산모시 짜기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문정옥(78)씨는 "허리가 아파 몇 년 째 베를 짜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전남 곡성군에서 삼베를 짜온 김점순(88.중요 무형문화재)씨도 "힘들어서 이제 못한다"고 했다. 100년 가량 중단된 금속활자 기술을 복원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던 오국진(62.충북 청주시)씨도 뇌졸중으로 작업을 못한다.

국가 지정 공예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절반 이상(50.5%)은 70세 이상. 60대가 25%며, 40대는 한 명뿐이다. 취재팀이 설문 조사한 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중에서도 60세 이상이 60%였다. 보유자의 연령이 높아지면 전승이 중단될 가능성도 커진다.

# 후계자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유자가 작업을 못해도 후계자가 있다면 기술의 맥은 이어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종목이 속출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 무전동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만난 조대용(55)씨. 4대 째 발을 만드는 염장(廉匠.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다. 하지만 그는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발 밖에서는 안이 안보이지만 안에선 밖이 훤하죠. 그래서 여름이면 여인네들은 발을 치고 편한 복장으로 더위를 피하곤 하지요. 선비 같은 멋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런데 배울라카는 사람이 없어요."

발 하나를 만들려면 한 달에서 석 달 가량 꼬박 앉아 작업해야 한다. "배워둘만은 하지 않느냐"는 조씨의 설득에 아들(27.조선소 근무)이 가끔 익히지만 업으로 할지는 불투명하다.

고구려 쌍영총의 벽화에 등장하는 전통(箭筒.화살집). 경북 경주 민속공예촌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화살집을 만들고 있는 김동학(75.중요 무형문화재)씨도 "그동안 몇 명에게 기술을 전수했지만, 중간에 직업을 바꾸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더라"고 하소연했다.

# 판로 없어 생계 걱정할 판

전통 공예가 인기가 없는 것은 돈 벌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문영철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사무관은 "산업 발전과 생활 양식의 변화로 공예 분야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전체 전승 취약 종목의 70%가 공예"라고 전했다.

전남 담양군 향교리에서 6대 째 참빗을 만드는 고행주(70)씨는 "작업량이 예전에 비해 98% 줄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파마를 하고 플라스틱 제품이 넘치면서 참빗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후계자로 올려놓은 아들도 대자리를 만들어요. 참빗을 잊어선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지만 몰라요, 나 죽고나믄 어떻게 할란가…."

작업 환경도 열악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역 건너편 논두렁길을 따라가자 '중요 무형문화재 64호 기능 전수자의 집'이란 표말이 걸린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목가구 등에 쓰이는 금속 장식물과 자물쇠를 만드는 '두석장(豆錫匠)' 박문열(57)씨는 2년간 임대한 이 곳에서 작업을 한다. 손으로 일일이 때려 문양을 넣지만 부속품인 장석은 큰 돈을 받지 못한다. 박씨는 "주문이 뜸해 요즘은 월 수입이 50만원도 안된다"고 한다.

무형문화재=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와 지자체 지정 '시.도 무형문화재'가 있다. 보유자에겐 매월 전승지원금(중요 100만원, 시.도 60만~90만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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