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술 취한 환자에 맞아 동맥 터진 응급실 의사...앞으로는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월 새벽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진료차트를 작성하던 구미차병원 응급실 전공의를 폭행하는 모습 [대한의사협회]

지난 7월 새벽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진료차트를 작성하던 구미차병원 응급실 전공의를 폭행하는 모습 [대한의사협회]

지난 7월 31일 새벽 경북 구미시의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A(25)씨가 의사 김모(32)씨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술을 마시다 일행에게 맞아 얼굴과 머리를 다쳐 병원을 찾았다. 폭행 전부터 응급실 내부에서 침을 뱉고 난동을 부렸다. 그는 선 채로 차트를 작성하던 의사 김씨 뒤로 갑자기 다가가 철제 트레이로 김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A씨가 폭행을 휘두른 이후 응급실은 1시간 가까이 마비됐다. 그새 코피가 멎지 않아 응급실을 찾은 6세 소녀 등 10여명의 환자 진료가 늦어졌다. 경찰에 연행된 A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응급실 폐쇄회로(CC)TV를 본 뒤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2시간 만에 풀려나왔다. 당시 경찰은 A씨를 불구속 입건한데 대해 “초범이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A씨처럼 응급실에서 의사ㆍ간호사 등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하고, 진료를 방해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형량하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1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폭행 사건에 흔히 노출된다. 대한응급의학회의 지난 7월 조사 결과 응급의료종사자 62.6%가 폭행을 경험했고, 39.7%는 근무하는 응급실에서 월 1회 이상 폭행 사건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응급의료 방해 행위로 신고ㆍ고소된 893건 중 폭행 365건(40.9%), 난동ㆍ성추행 등 268건(30%), 폭언ㆍ욕설ㆍ위협 149건(16.7%)으로 나타났다. 가해자 대부분은 환자(82.5%)나 보호자(15.6%)였고, 그중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 비율이 67.6%에 달했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응급실 폭행범에 대해 일반 폭행범보다 강하게 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보고된 응급실 난동사건 10건의 법원 판결 결과 실형 선고를 받은 건 2명뿐이었다. 복지부는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고 예방 효과를 위해 형량하한제 도입을 추진한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박재찬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형량하한제가 도입되면 벌금형은 배제되고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국회에서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수위 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손가락 골절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의사를 폭행하는 모습. 그는 의사가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내가 웃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청원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욕설을 하면서(오른쪽 사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

지난 7월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손가락 골절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의사를 폭행하는 모습. 그는 의사가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내가 웃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청원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욕설을 하면서(오른쪽 사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 지정기준에 보안인력 최소 배치기준을 명시하고 응급실 보안인력을 채용하면 그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규모가 작은 응급실에는 보안인력이 없어 경찰 도착 전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응급실 전담 보안인력이 있는 병원 비율을 보면 규모가 큰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97.2%지만, 지역 응급의료센터는 79.3%, 지역 응급의료기관은 23.2%에 그쳤다. 또 경찰청-지방자치단체-의료기관과 함께 운영 중인 주취자 전용 응급의료센터를 확대하기로 했다. 경찰이 24시간 상주하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현재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전국 11개소가 운영 중이다.

경찰청은 ‘응급의료 현장 폭력 행위 대응지침’을 마련해 시행한다. 이에 따라 응급실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신속하게 출동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흉기 사용, 중대 피해 발생 등 주요 사건은 형사(수사)과장이 직접 수사를 지휘하고 공무집행방해에 준해 구속수사 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윤태호 공공보건정책관은 “응급실 내 폭행은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다른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공공의 문제”라며 “경찰청과 협력해 이번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응급의료종사자가 안심하고 응급실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