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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핵무기 사용 필요성 못 느끼게 하는 게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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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호 29면

핵전쟁 가상 소설 쓴 핵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북·미 핵전쟁 가상 소설을 펴낸 제프리 루이스 박사. 현재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에서 동아시아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있다. [사진 제프리 루이스]

북·미 핵전쟁 가상 소설을 펴낸 제프리 루이스 박사. 현재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에서 동아시아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있다. [사진 제프리 루이스]

“남한 민항기가 실수로 북한 영공에 들어서자, 북한군이 이를 미군 스텔스기로 오인해 격추한다. 남한 대통령이 미국과 논의하지 않은 채 상징적 보복 차원에서 북한 지도자 등을 위한 시설을 미사일로 공격한다. 이를 한·미의 전면 공격으로 오인한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한다. 미국이 재래식 무기로 대응했고 북한이 미 본토를 향해 핵 공격을 한다….”

남·북·미 전시계획엔 선제타격 포함 #선택의 여지 없다 오판하면 핵 전쟁 #문 대통령 ‘긴장완화 우선’은 옳아 #북한이 안정된 통제력 갖는 게 유리 #북, 미국 어디든 핵 보낼 능력 있어 #대량생산 파키스탄식 안 되길 바래

올 8월 발간된 한 소설(『The 2020 Commission Report on the North Korean Nuclear Attacks Against the United States』)의 줄거리다. 미국·유럽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를 두고 “그저 추측일까, 예언일까”라며 실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럼직한 게 저자가 핵 전문가다. 실시간 위성 관찰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름 높은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에서 동아시아비확산프로그램 소장으로 일하는 제프리 루이스 박사다. 다소 ‘발칙한 상상력’의 산물인 그의 소설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

신간 홍보차 하버드대에 방문한 루이스 박사를 7일(현지시간) 만났다. 그는 대화 중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상정했다.

저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과 북한이 어떻게 핵전쟁에 빠져드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도 원치 않지만 그럼에도 현재의 조건 하에 충분히 가능한 핵전쟁 말이다. 정책결정자들이 실제로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관한 이야기다.”
문 대통령이 미국과 논의하지 않고 보복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던데 현실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우선 남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해선 통상 잘 얘기하지 않지만 분명히 있다. 문 대통령이(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던) 집권 초기에 미사일 시험장을 찾아 미사일을 쓸 수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나친 평화주의자(super dove)’란 인식에 동의하기 어렵다. 만일 북한이 민항기 격추 같은 끔찍한 일을 벌인다면 (소설 속의 문 대통령과 같은 선택도) 상상 불가능한 게 아니다. 소설 속에선 문 대통령이 군의 대량응징보복 옵션을 보고받곤 보복의 규모를 크게 낮추는 것으로 설정했다. 제한된 대응이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대다수의 지도자가 범하는, 전형적 정책 결정의 오류다. 미국과 논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 건 문 대통령에게 다소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서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갖는 흥미로운 속성이다.”(※실제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은 현무 2 미사일 발사시험장을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나는 대화주의자이지만 대화도 강한 국방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전면전을 피하려 하지만 결국 핵무기를 사용해서 한·미·일을 공격하게 된다.
“북한이 먼저 핵을 사용하는 건 한 가지 경우라고 보는데 미국의 북한 침공이 임박했다고 판단했을 때다. 남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문 대통령은 상징적 보복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관점에서 제한적(bloody nose) 타격과 전면전, 이 둘을 구별할 수 있을까. 만일 임박한 전면 공격의 초기 신호라고 판단하게 된다면…. 지하벙커에서 통신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가진 김 위원장이라면 전면전으로 여길 수도 있다.”
누구도 원치 않지만 결과적으로 핵전쟁이 벌어진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누군가 일어나서 ‘일진이 안 좋으니 핵전쟁을 시작하자’는 식으로 핵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핵전쟁의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지 않다. 오인과 오판으로도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한국·미국·북한의 전시 계획(war plan)은 모두 전시의 선제 타격을 포함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참모들이 한·미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김 위원장에게 먼저 움직일 것을 촉구할 것이다. 한·미 군 당국도 대통령에게 시간이 지체될수록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할 것이다. 전쟁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의 핵 지휘·통제 통신망의 불안정도 위험요소로 지적했다.
“통신망 상태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북한의 통신망을 담당하는 이집트계 기업 오라스콤에 따르면 놀라울 정도다. 북한의 전반적인 통신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핵 지휘·통제 체계 또한 몹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냉전의 교훈 중 하나는 적국의 지도자가 안정된 통신망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도 낫다는 점이다. 불안정한 통신망으로 인해 김정은이 예하 사령관들에게 핵무기 발사 권한을 이양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일 수 있다. 핵보유국인 북한과 공존한다고 가정할 때 김 위원장이 자신감을 가지고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게 우리의 이해가 더 맞는다. 안정적 통신망 시스템은 그중 중요 요소다.”
얼핏 비핵화와 북한의 핵 지휘·통제의 안정화가 어긋난 목표처럼 들린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가 ‘희망 사항(aspiration)’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우선하는 그의 선택이 옳다고 본다. 안정된 억지력이 중요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 교수는 오랫동안 북한이 안정된 핵 지휘·통제망을 보유하고 핵무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미들베리국제관계연구소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 어디에든 보낼 능력이 있다고 본다. 믿을만한가가 문제이겠지만 절반만이라도 미 본토에 도달한다면 북한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한과 일본, 그리고 그곳 미군 기지를 겨냥해 상당한 무기를 비축해뒀는데 그건 믿을 만하다고 본다. 테스트 성공률이 70% 정도라고 한다. 우린 여러 시설의 움직임도 보는데 예를 들어 (미사일 연구단지인) 산음동을 드나드는 차량도 본다. 북한이 여전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2, 화성-14, 화성-15형 미사일을 생산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거짓말한다고 단순히 말하기엔 미묘하다. 우리가 보기엔 북한은 연구·개발(R&D)에서 생산으로 방향을 옮겼다. 더 이상 새로운 연구·개발을 하지 않는다. 지속적 생산은 우려되지만 연구·개발을 중단한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주목하는 건 북한이 화성-14, 화성-15 미사일을 최초로 발사한 곳에 기념물을 세웠는데 북한 내에서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처럼 핵을 보유하지만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모델을 목표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이 취한 조치들에 대한 평가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의미 있는 제한을 가한 건 아니다. 북한은 여전히 핵물질과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도발적일 수 있는 실험을 중단한 것이다. 모욕적(insulting)일 수 있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는 의미에서 호의(goodwill)의 제스처라고 본다. 김 위원장이 마음을 바꿔 실험하겠다는 게 훨씬 더 나쁜 일이다. 나는 북한이 ‘확증 보복(Assured Retaliation)’식 중국 모델을 채택하길 바라며 핵을 대량생산해 실전에 배치하는 파키스탄 모델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

보스턴=김동현 중앙SUNDAY 통신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
Dong-Hyeon_Kim@hks.harva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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