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허물어버린 미 고교정서|복원되자 값 치솟아 소유권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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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학교에서 어느 날 담벼락의 낡아빠진 벽화를 뜯어 내던져 버린다. 한 학생이 이걸 주워 미술품 보존 전문가에게 가져가고 그는 이 그림을 감쪽같이 원상으로 복원해 놓는다. 그로부터 16년, 한 때는 단 한푼 어치도 못되던 이 벽화가 무려 1백25만 달러(한화 약8억4천만원)란 엄청난 값으로 치솟는다.
이 경우 그림의 진짜 주인은 누가 돼야 할까. 학교인가, 복원작업을 한 전문가인가.
「제임스·도허티」가 1934년 스탬퍼드 공립 고등학교 담 벽에 그린 이 그림의 소유권 귀속문제를 놓고 최근 그것을 버린 학교 및 시 당국 측과 주워서 복원한「호엘저」란 벽화복원전문가 사이에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높이 2·5m, 길이 33m의 이 벽화를 둘러싸고 지난 86년부터 시작된 양쪽의 싸움은 지난달「호엘저」측이 스탬퍼드시를 상대로 맨해턴 연방 지법에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더욱 복잡하게 얽혀들고있다.「호엘저」는 소장에서 그림을 자신의 소유로 명확히 법인해 주거나 아니면 복원의 대가로 시 당국이 1백40만 달러(한화 약9억4천만원)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물론 상대측의 반응은『웃기지 말라』다.
스탬퍼드시 관리들은 도대체 「호엘저」씨에게 그 그림을 복원하라-마라 한 적이 없으니 대가를 지불하라는 요구는 터무니없는 생떼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호엘저」씨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초「프랭크·보운」이란 학생이 이 그림을 쓰레기장에서 발견해 가져간 것이 아니라 학교비품 창고에서 잘못 가져간 것이 분명하므로 당연히 그 소유권은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학생인「프랭크·보운」의 증언은 학교나 시 관리들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1971년에 쓴 한 편지에서 자기는 당시 분명히 학교 옆 쓰레기더미에 똘똘 말린채 버려져 있는 벽화조각을 주웠고 이를 잡지를 통해 우연히 알게된 「호엘저」씨에게 전해주었을 뿐이라는 것.
문제는 이럴 때 직접 나서서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 주어야할「보운」이란 학생이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것이다. 70년 스탬퍼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노스캐롤라이나 주 채플 힐로 이사했으나 벽화의 소유권 문제가 떠들썩하게 법정으로 비화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편「호엘저」씨 쪽은 스탬퍼드시 당국에서 1백40만 달러만 내놓는다면 언제라도 벽화를 되돌려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 1백40만 달러는 87년「소더비」가 감정한 그림 값 1백25만 달러에 자신의 복원 수고비 15만 달러를 얹은 액수. 『벽화 복원을 위해 햇수로 3년여를 고생한 대가로서는 최소한의 요구』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벽화를 되돌려 받을 경우 이를 시청의 빈 벽에 내걸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시 당국관리들은「호엘저」의 요구액에 입을 딱 벌리고 있다. 그들은『아무리 무지하다고 해도 예술품을 일부러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라는 상식론을 앞세우면서『10만 달러 이상은 줄 수 없다』는 고집을 끝내 허물지 않고 있다.<추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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