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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산 반세기…"이 사람을 찾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본지에 게재된 사할린 거주 동포들과 연락을 하고싶은 분은 중소 이산가족회로 연락하거나 사할린의 한국신문 『레닌의 김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중소 이산가족회=대구시 중구 동인 2가 42번지 전화(대구)423-1968.
▲『레닌의 김로』=PO Leninskomy Puti69300 gorod Ujuno Sakhalinsk Ulitza Dzerzinskovo 34 USSR<편집자 주>

<소 유즈노사할린스크="최철주" 특파원>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들의 친척을 찾아달라는 호소는 너무나도 절박하고 안타깝다. 기자가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만난 대부분의 교포들은 자신이나 부모들의 고향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한자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고향근처 어딘가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며 기자에게 핏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사연들을 적어주었다.
올해 75세인 이기철 할아버지는 그의 주소를 적은 메모를 기자에게 주면서『선생님, 저 이기철 입니다. 잊지 말아요. 이기철 이기철…』. 그는 목이 꽉 메이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나-잊지 말아요. 나-』.
반세기 동안이나 조국과 동떨어져 살아온 그들에게『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하는 존칭어는 때때로 통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화를 더디게 만들었다.
한국과 조선과 남조선이 뒤범벅이 되고 기자를「선생님」「남조선동무」「기자동무」로 부르는 등 호칭에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났으며 자기 친척을 찾아달라 하면서도 친척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까와 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옥순씨(59)는 남편 김진화씨(65·경북 영양)가 자다가도 한국을 이야기한다면서 그의 형제들을 수소문해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래도 미덥지 않았던지 기자의 취재용 녹음기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면서『김진화예요. 김진화』라고만 외쳤다.
그들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장에서 김치를 파는 아주머니들은 언 손으로 맞춤법이 엉망인 주소를 적어 주면서『아이구, 손이 부끄러예. 받으시소』하고 김치봉지를 안겨주었다.
북한적의 유분이 할머니(70)는 기자를 만나기 위해 3시간이나 새벽 차를 타고 달려왔다. 북한적 증명서로도 한국에 있는 친척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근심이 태산같아 보였다.
아버지의 망향에 다소라도 위안을 드리기 위해 왔다는 한 젊은이는 그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만났다는 증거로 이름을 써달라고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조차도 그의 아버지에게는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경황 중에 한국 연고지 주소를 빠뜨리고 돌아갔다.
일제침략이 빚은 한국의 살아있는 비극의 현장은 이제 점차 옛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위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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