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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트리클 다운’ vs 문재인의 '트리클 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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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이달 1일부터 아마존은 미국 내 직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올렸다. 정규직 25만 명과 연말 특수에 맞춰 단기 채용한 10만 명에게 모두 적용한다. 기업이 자발적·개별적으로 인상했다는 점에서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기업이 지나치게 낮은 시급을 지급한다는 비판도 작용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모자란 일손을 채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요즘 미국은 구인난이 심각하다. 경제 호황으로 일자리가 늘면서 숙련된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사람 구하기 경쟁이 치열해졌다. 숙련공을 서로 데려가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임금이 오른다. 아마존에 이어 월마트와 스타벅스도 임금 인상 방침을 밝히면서 임금 인상이 소매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미 노동부의 ‘10월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미국 내 일자리는 25만 개 늘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3.7%다. 1969년 이후 4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두 달째 유지하고 있다. 그간 실업률은 조금씩 개선돼 왔다. 문제는 꿈쩍하지 않는 임금이었다. 고용은 점점 나아지는데 임금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 상황을 각국 중앙은행도, 경제학자도 설명하지 못했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스터리”라고 할 정도다.

아마존 사례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임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은 3분기에 임금이 3.1% 올랐다. 2008년 2분기(3.1%) 이후 10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속도가 더디더라도 결국 임금이 오른다는 게 늦었지만 확인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각각 지난해 1월, 5월에 출범했다. 공교롭게 집권 연차가 같아지면서 경제 성적을 비교당한다. 마침 두 정부는 경제정책에 관한 한 철학과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결과가 더 궁금해진다. 지금까지는 성장과 고용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압승이다. 한국은 성장률 하락에 고용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근본적 차이는 누구의 소득을 먼저 늘려주느냐에서 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를 통해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낙수)’ 이론을 꺼내들었다. 부자와 대기업을 봐준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완전 고용과 임금 상승을 이끌어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정부가 국민의 소득을 먼저 늘려주면 소비가 늘고 생산도 증가한다는 ‘트리클 업(trickle-up·분수)’ 이론을 실험하고 있다. 트리클 다운으로 서민이 혜택을 보기는커녕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근거를 든다. 성적표가 다달이 공개되다 보니 자꾸 비교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언제까지 품을 수 있을까.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