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 규제 정도가 기본권 침해에 이른 느낌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정부의 더딘 규제 개혁 속도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박 회장은 어제 광주에서 열린 전국 상의회장단 회의에서 “취임 후 39차례나 규제 완화를 촉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기업인이나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규제 정도가 기본권 침해에 이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 기조에 대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박 회장은 “분배 문제는 민간의 비용 부담을 늘리기보다 사회 안전망 확충 등 직접적인 분배 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처럼 분배와 성장 목표가 뒤섞인 정책을 꼬집은 것이다. 예산 증액으로 경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부 구상에 대해서도 “단기적 처방”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대한상의는 그동안 현 정부 정책 방향에 비교적 협조 자세를 보이며, 재계를 대표하는 정책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단체가 목소리를 높인 것을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런 지적은 그동안 수없이 나왔지만, 현장에선 변화가 없었다. 의료 분야 규제를 풀면 최대 37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분석에도 영리병원 설립 및 원격 의료 허용은 풀릴 기미가 없다. 승차 공유(카풀)와 숙박 공유 서비스도 이해 당사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기존 정책을 밀고 나갈 의지를 밝혔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당·정·청 회의에서 면피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기업 옥죄기라는 비판을 받는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는 강행할 움직임이다.

어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 국내외 기업 투자 80조원을 유치해 일자리 27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에서 실효성 없는 일자리 계획이 발표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경제 실정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수반되지 않은 이런 이벤트성 발표들은 그저 숫자 놀음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