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규직 세습 입 막으려다 국정조사 정 맞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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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용세습과 특혜채용 의혹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가 이달 4일 직원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사내 직원 게시판을 전격 폐쇄한 것은 본말이 뒤바뀐 처사다. 내부 공론장을 막아 잇따르는 직원들의 회사 잘못 비판, 즉 민의를 막으려는 꼼수나 다름없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실직고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조금이라도 협조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교통공사가 사내 게시판을 폐쇄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국정감사 기간 중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과 조직 안정화를 위하여 잠정 폐쇄한다’고 했다.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다. 문제의 직원 게시판에는 회사 비판 글, 채용 특혜 관련 추가 제보를 독려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결국 조직 안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명백한 단결권 침해이자 여론 탄압이며,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채용 특혜 의혹을 키웠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교통공사 노사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을 상대로 무더기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벌써 4개 언론사의 기사 11건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는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우고 입을 막아 향후 보도의 방향과 수위를 압박하는 이른바 ‘언론 재갈 물리기’가 아닌지 우려된다.

고용세습은 적폐 중 적폐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때 밝힌 공평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세 가지 가치를 모두 위반한 데다 그 피해자가 취업전쟁터에 내몰린 힘 없고 ‘빽’ 없는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교통공사 측은 감사원 감사라는 매를 피해 가려다가 국회 국정조사라는 정을 맞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