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콩' 여의사 전쟁일기 화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쟁터에 나간 첫사랑과 다시 만나기 위해 북베트남군 군의관을 자원했다가 전사한 20대 여의사가 생전에 이념과 사랑에 대한 감회를 적은 전쟁일기가 책으로 발간돼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70년 호찌민 루트의 야전병원에서 근무했던 당 뚜이 짬(사진)이다. 70년 미군의 공습을 받아 27세의 나이로 숨지기 전까지 전쟁의 처절함과 외로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등을 일기에 담았다.

"68년 11월 26일. 사방에서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오늘, 내 생일이다. 한쪽 어깨엔 배낭을 메고 다른 쪽에는 환자를 부축하고 도망가 숨는 것에 익숙해졌다. 전장에서 2년을 보내고 나니 이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어느 날은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M?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가요?"라며 행방을 모르는 첫사랑 M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사회주의가 꽃피는 아름다운 날을 보게 된다면 이를 위해 피를 흘린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라"고도 적었다.

이 일기장은 당시 미군으로 참전했던 프레드 화이터스트가 수색 도중 발견해 30여 년 동안 간직하다 지난해 미국의 한 대학 베트남 자료실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일기는 지난해 말 베트남에서 '당 뚜이 짬의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온 뒤 30만 부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노이 외곽에 있는 무덤에 매일 수백 명이 다녀가고, 기념 병원과 동상이 세워지면서 당 뚜이 짬은 새로운 국가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기에 언급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테마여행 상품도 생겨났다.

뉴욕 타임스는 29일 "여의사의 일기는 전쟁에 관한 기억이 희미한 베트남인에게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 인구 8300만 명 가운데 3분의 2가 75년 종전 이후에 태어났다.

화이터스트는 "전술적 가치가 없어 불에 태워 버리려 했으나 통역병이 만류해 보관했다"며 "그 뒤 저녁마다 통역병이 전해주는 일기 내용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