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준의 의학노트] 메스머의 의학 사기극에서 인류가 배운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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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35면

임재준 서울대 교수

임재준 서울대 교수

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의학이 인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은 무균 수술법과 예방접종이 도입된 19세기 중반부터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 이후 의학은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 내었는데, 의학의 발전 과정은 사실 단순하다.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면 그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1778년 프랑스 파리로 가보자.

오스트리아 출신인 40대 중반의 의사 프란츠 메스머가 그해 파리에 도착한다. 빈의 명문 의과대학 출신인 그는 ‘동물 자기’ 이라는 묘한 이론을 주장하다 빈 의학계에서 축출되었는데, 그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우주의 별들로부터 내려오는 ‘자기(磁氣)’가 사람의 몸을 통과하면 어떤 종류의 병이든 낫게 되는데, 메스머 자신은 별들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자기를 직접 만들어내 환자의 몸에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황당한 주장은 메스머에게 자기 치료를 받던 중 강력한 효과 때문에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점차 힘을 얻어 갔다. 어느새 그의 병원은 귀족들로 북적이게 되었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지지까지 등에 업으며 파리 시민들을 열광시킨다.

 1778년 홀연히 등장하여 ‘동물 자기’라는 극적인 치료법으로 파리 시민들을 매료시켰던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 (1734-1815).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z_Mesmer

1778년 홀연히 등장하여 ‘동물 자기’라는 극적인 치료법으로 파리 시민들을 매료시켰던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 (1734-1815).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z_Mesmer

그러나 메스머의 인기가 오를수록, 그의 주장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반론 역시 거세져만 갔다. 결국 메스머가 파리에 도착한 6년 후인 1784년, 당시 프랑스를 통치하던 루이 16세는 왕립 과학원에 ‘동물 자기’ 이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도록 명령한다. 왕립 과학원은 곧바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검증팀을 구성했는데, 천문학자 장 바이, 식물학자 앙투안 로랑 드 쥐시외, 화학자 앙투안 로랑 드 라부아지에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의외로 프랑스의 최고 석학들을 이끌 팀장에는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지명되었다. 물론 그가 피뢰침을 개발하는 등 전기나 자기의 흐름에 식견을 가졌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검증팀을 맡은 그는 70대 후반의 노구를 이끌고 메스머와의 승부를 준비한다.

  메스머의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한 벤자민 프랭클린 (1706-1790),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enjamin_Franklin

메스머의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한 벤자민 프랭클린 (1706-1790),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enjamin_Franklin

첫 번째 검증 작업은 프랭클린이 살던 저택의 정원에서 진행되었다. 검증팀은, 매스머의 제자이자 나무를 자기화하여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의사 사를 데스롱에게 나무 한 그루를 자기화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환자 한 명을 불러 눈을 가린 후 자기화된 나무가 어딘가 있으니 나무 둥지를 하나씩 껴안아보라고 부탁한다. 환자는 나무와 접촉할 때마다 몸이 심하게 떨리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네 번째 나무를 안은 후 기절하고 말았는데 정작 데스롱이 자기화했다는 나무는 환자가 만져보지도 못한 다섯 번째 나무였다.
두 번째 검증은 자기화되었다는 물의 맛이나 색깔, 냄새가 맹물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 착안하여 진행되었다. 검증팀이 맹물을 대접에 담아놓고 자기화된 물이라고 설명한 다음 환자에게 마시게 했더니 그녀는 마시자마자 기절해버렸다. 얼마 후 깨어난 환자에게 이번에는 자기화되었다는 물을 맹물이라고 설명한 후 마시게 했는데, 이때는 환자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물자기’를 이용한 치료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힘을 잃은 메스머는 파리를 떠나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재기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한 후 1815년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류는 이 검증 과정에서 귀중한 지혜를 얻었다. 진짜 효과는 전혀 없는 약이라도 환자가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면 약간의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약의 효과를 검증할 때는 진짜 약과 구분할 수 없는 가짜 약을 함께 사용하여 효과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졌던 수많은 치료법들이 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 의학은 쉼 없이 발전해왔다.

▶약력=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환자 진료 외에 의학과 삶에 대해 글을 써왔다. 저서로는『가운을 벗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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