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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표 던진 김인철의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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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놀랍지 않다”거나 “나도 겪은 일”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을 두고,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인철 건축가(아르키움 대표)가 불복 및 사퇴 선언을 한 단독 인터뷰가 나간 뒤 건축계의 반응이다. “짜고 치는 심사”였다는 노장 건축가의 고발에, 공공 건축물과 설계 공모전을 둘러싼 문제점을 짚는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건축 공사비는 연간 30조원에 가깝다. 한 해 전국에서 일어나는 건축 공사비의 20%가 넘는다. 이렇게 큰돈 들이는데 잘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물을 사용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다. 이전에는 가격만 보고 건축가를 정하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내용을 살피자며 설계 공모전을 꽤 연다. 일정 규모가 넘는 건물일 경우 공모전을 열게끔 법으로 아예 못 박아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공모전의 공정성이다. 로비를 우려하며 심사위원 명단을 아예 공개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공개하는 추세다. 안목 있고 공정한 심사위원이 참가자들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모전 참가자들이 심사위원을 더 따진다. 공정하지 않은 게임판에 사력을 다해 뛰어들 건축가는 없다. 그러다가 소규모 설계 사무실의 경우 망한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들어설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과 2등작(아래 사진). [사진 김인철 건축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들어설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과 2등작(아래 사진). [사진 김인철 건축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들어설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위 사진)과 2등작. [사진 김인철 건축가]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들어설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위 사진)과 2등작. [사진 김인철 건축가]

하지만 심사위원의 공정성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발주처인 공공기관의 공무원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단체장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지 판은 뒤집힐 수 있다. 그렇기에 한 건축가는 “심사위원의 명단 공개와 더불어 각 심사위원이 지금까지 평가해 당선시킨 프로젝트 명단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건축물 관련 공모전을 주최하는 공무원의 책임감도 중요하다.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한 담당자가 잘 시작해 잘 끝맺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순환보직이 걸림돌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보직을 유지하게끔 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내 업무라고 끝까지 생각하는 공무원이 있어야 좋은 공공 건축물이 지어진다.

행복청은 1일 “심사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지침에 따라 모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침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김인철 건축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수십년간 이어온 은근한 관행을 향해 날 선 소리를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소리가 더 왁자지껄하게 나야 좋은 공공 건축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