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삼성·롯데'적과의 동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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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9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12층에선 특이한 계약식이 열렸습니다. 삼성토탈과 롯데대산유화가 계약을 체결했는데, 두 회사는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안에 2008년 완공될 프로필렌 생산공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생산한 제품도 나눠 쓰기로 했습니다. 삼성토탈이 100% 투자해 공장 건설과 운영을 맡고, 롯데대산유화는 이 공장에 원료를 대고 완성된 제품과 부산물을 나눠 받는다고 합니다.

특이하다고 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산단지에 공장을 두고 있는 두 회사는 애초 프로필렌 공장을 각자 지으려고 했습니다. 전기전자.생활용품.자동차.건축자재 등에 널리 쓰이는 합성수지 원료인 프로필렌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각자 프로필렌 공장 건설을 검토하다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곰곰이 따져 보니 각자 짓는 것보다 공장을 합치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회사가 각각 연산 10만t 규모의 공장을 지으려면 400억원씩 모두 800억원이 필요하지만 20만t 규모의 공장 하나를 짓는 데에는 610억원이면 됐습니다. 관리비와 공장 운영 경비도 따로 짓는 데 비해 연간 100억원 이상이 절감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올 3월 프로필렌 공장을 단일화하자는 논의가 시작돼 한 달 만인 4월 초 최고경영자(CEO)들끼리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같은 업종을 하는 대기업들이 손을 잡는 것은 국내에서 흔치 않은 일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항공.철도차량.선박엔진 등의 분야에서 대기업들이 합작해 회사를 만든 사례가 적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합치게 했지요. 특히 지분을 나눠 갖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과 원료.제품 공급을 나눠 맡는 형태의 합작은 드뭅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믿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화업계에선 2003년 금호피앤비화학과 LG석유화학이 이번처럼 석유화학 원료인 비스페놀A 공장을 합쳐 지으려다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각자 투자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경영이 화두입니다. 하지만 대기업끼리의 상생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해 보입니다.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과 정범식 롯데대산유화 사장은 "중동과 중국 경쟁업체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손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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