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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리의 라떼파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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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 17일 스웨덴 스톡홀름 거리는 꽤 쌀쌀했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 길에 한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30대 초반의 젊은 아빠 셋이 유모차를 세우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어 유모차를 끌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라떼파파’로 알려진 스웨덴의 육아휴직 아빠들이다. 엄마가 출근하고 나서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는 모습에서 유래한 말이다. 1년은 엄마가, 6개월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퇴근하면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아빠들도 많았다. 정시 퇴근이 정착돼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라떼파파는 스웨덴 복지와 양성평등, 고출산율(2015년 1.9명)의 상징이다. 우리가 9월 도입한 아동수당뿐만 아니라 12세 이하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휴가를 내면 급여(연간 120일)를 받는다. 육아휴직 급여도 소득의 80%(우리는 둘째 자녀에 한해 상한 200만원)까지 나온다. 1930년대 도입한 부모보험이란 제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언론진흥재단의 사회보장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해 스웨덴·독일·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어디에도 출산정책과를 찾을 수 없었다. 복지와 가족, 특히 양성평등에 투자하다 보면 출산율이 저절로 올라간다는 게 공통적인 조언이다. 스웨덴 스톡홀롬대학 군나르 앤더슨 교수(인구학)는 “출산율 제고에 중점을 둔 적이 없다”며 “육아휴직을 비롯한 일·가정 양립 정책이 가장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율이 떨어진 뒤 인구가 정상 구조로 회복하려면 100년 걸린다”고 말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니클라스 뢰프그렌은 “복지시스템 마련에 100년 걸렸다. 단시간에 힘들다”고 말했다.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아내가 둘째를 갖재요.” “힘들긴 한데 아이랑 친해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양성평등 우수기업 롯데그룹 육아휴직 라떼파파들의 말이다. 바리바리 짐을 싸서 아이와 야외로 나가고, 능숙하게 아이 머리를 감긴다. 육아휴직을 하니 비로소 이런 것들이 새로 보인다고 한다. 복지 강국, 인구 강국은 100년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는 길게 봐도 20년이 채 안 된다. 신생아 감소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다. 저출산 사회에 대비하는 게 급선무다. 답답하지만 국가 백년대계를 짠다는 마음으로 길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만루홈런은 없다. 한발씩 뚜벅뚜벅 걷다 보면 새로 보이는 게 있을 게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