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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거둬도거둬도 왜 넘쳐 흐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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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당국의 통화관리가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시중의 돈을 아무리 거둬들여도 통화증가율로 보면 돈은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중에 돈이 많으면 금리는 떨어져야 정상인데 시중 실세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기현상까지 빚어져 통화당국을 당혹케 하고 있다.
과잉통화문제는 그것이 국민경제 전반에 엄청난 손실을 강요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한층 강조된다. 특히 지난해의 물가상승률이 당초 정부의 억제목표선(5∼6%)을 훨씬 뛰어 넘은 7·2%에 달했고 그같은 영향은 최소한 1년간은 지속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통화관리가 급선무인데 바로 이 통화관리가 당국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최근의 통화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나 한은은 시중 돈을 흡수하기 위해 통화조절용 채권발행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으나 이 방법만으로는 효과적인 통화관리도 안되고 금리만 올려놓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재무부와 한은은 올1월중에만 통화조절용 채권을 자그만치 3조2천억원어치나 팔았다. 물론 월중 최고기록이다. 이중 만기 도래분이 2조4천억원이었으니 새로 발행한 것만 8천억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통안증권물량을 이처럼 갑자기 늘리다보니 작년말 첫 경쟁입찰시 낙찰채권 수익률이 연12·7%선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13%로 사상최고치로 뛰어올랐다. 통안증권 유통수익률도 작년12월중 평균 12·85%에서 지난 1월에는 12·93%로 상승했다.
통안증권을 제2금융권에 할당 판매함에 따라 제2금융권의 자금사정도 나빠져 단자회사 콜금리가 보름전만 해도 9∼10%였던 것이 최근에는 12·5%까지 치솟았다.
물론 시중금리의 상승은 통화채의 과다발행 때문만은 아니다. 1월들어 작년도 2기분 부가세 납부와 곧 뒤이어온 구정 자금수요가 금리를 다소 끌어올린 부분도 있다.
그러나 흑자지속과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에 힘입어 기업들의 자금수요는 예년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게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결국 당국의 통화환수가 갑자기 이루어지다 보니 금융기관간 자금흐름에 왜곡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이는 금리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금리는 올라가더라도 통화고삐는 잡혀야할텐데 그것마저 제대로 안되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1월중 총통화증가율이 20%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금리나 총량규제 양면에서 통화정책이 실패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같은 실패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부당국이 스스로 그같은 결과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백42억달러의 경상수지흑자를 냄으로써 해외부문의 통화증발이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정부는 금리자유화조치를 밀어붙이면서 금리자유화에 따른 금리의 단기간 급등을 우려, 알게 모르게 통화공급을 늘려왔다. 불붙은 기름에 물을 끼얹은 꼴이다. 11월과 12월 두달동안 늘어난 총통화가 연간 증가한 총통화의 45%수준인 3조8천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금리자유화조치를 단행하면서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저축률이 투자율을 앞지르고 있고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 자금사정이 넉넉하니 금리자유화를 실시, 시장기능에 맡겨도 금리는 올라가지 않을 것이며 통화관리도 지준 정책이나 재할인정책 등 간접규제방식으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통화안정권을 강매하지 않고 공개입찰로 소화키로 했던 것도 이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취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는 정부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고 있다.
지준 정책이나 재할인정책이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경쟁입찰방식의 통안증권발행은 금리만 끌어올리는 결과를 초래, 할수없이 다시 보험·단자사 등의 협조를 받는다는 궁색한 명분을 빌어 강제 소화시키고 있다. 큰소리치고 시작한 일이 한달도 못돼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예측대로 저축률이 투자율을 웃돌고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늘지 않고 있는데도 왜 통안증권의 소화가 어렵고 금리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일단시중에 돈이 많아도 그 돈이 당국의 통화채권 매입에 몰리지 않고 그보다 투자수익이 더 높은 다른 쪽에 몰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통안증권수익률이 연13%라 해도 증시 활황에 따른 주가상승률이 연70%선에 달하며 부동산가격 상승률이 20%에 이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돈이라는게 한푼이라도 이자가 더 높은 쪽으로 몰리는 것이 기본적인 생리인데 이점에 대한 정책당국의 인식이 부족했던 점, 그리고 국민들의 투자성향과 투자패턴을 외면한 통화이론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최근의 통화정책에서 드러난 셈이다.
단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자금흐름의 애로현상은 당국의 정책이 일관성을 잃음으로써 가중되었다고 호소한다. 보험회사에서도 이같은 불평은 쏟아진다. 당초 자금운용계획을 보증보험 대출위주로 짜놓고 대출세일까지 벌이는 등 통안증권이 무더기로 떠 안겨져 자금사정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한교보의 경우보증보험대출의 1인당 대출한도를 3천만원으로 잡아놓았으나 최근 통안증권인수로 자금사정이 나빠져 이 한도를 1천만원으로 낮추었다. 특히 보험업계 등 한 금융기관의 자금핍박은 이목으로부터 예금을 기대했던 단자 등 다른 금융기관의 자금사정까지 악화시켜 자금의 흐름에 병목현상을 야기하고있다.
돈이라는게 물과 같이 예정된 양이 일정하게 흐르면 큰 탈이 없으나 그 양을 종잡을 수 없게되는 경우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오는 악순환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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