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교류 전력부터 시작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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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상호간 큰 이익>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으로 멀게만 보이던 금강산이 손에 잡힐듯 다가왔다.
북한과의 경제교류가 가시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질 좋은 공산품을 북한에 팔고 북한의 원자재를 수입해오겠다는 생각은 북한의 경제체제나 「자존심」을 고려할 때 환상에 가깝다는게 정부당국자의 시각이다. 우리가 전자제품이나 의류·컴퓨터를 파는 대신 무연탄·철광석을 가져오는 것은 북의 입장을 생각할 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북한의 지하자원 수출도 매장량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외화획득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당장 교류가 가능하고 상호간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분야가 남북한간의 전력 융통이다.
북한과는 1948년 5월14일 북한측이 송전선을 단절할 때까지 우리가 전력을 공급받고 대신 물자를 북측에 제공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유럽각국은 전력을 상품화해서 수입·수출을 하고있다.

<가능성 검토중>
○…동자부와 한전에 따르면 북한과 전력을 주고 받을 경우 융통규모에 따라 최소 1조∼3조원 가량의 발전설비 비용을 서로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남북한 전력의 품질이 비교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에따라 정부는 북한과의 전력교류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도 가장 경제성 있는 남북교류대상으로 전력을 꼽고 실증연구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전력교류는 원래 시차가 같은 남북보다는 서로 다른 동서지역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낮과 밤이 달라 전력 수요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우 시간대는 같지만 남한이 전력수요의 피크타임이 여름철인 반면 북한은 겨울철 초저녁이어서 전력의 융통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원자력과 화력발전소가 주종을 이루고있는 반면 북측은 수력발전소가 대부분이어서 남한이 평상시에 기저부하를 맡고 전력피크타임 때만 북한이 순간발전이 가능한 수력발전을 해주면 서로 불필요한 발전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전력난>
○…작년 여름 남한의 전력최대수요는 1천3백65만8천kw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피크타임 때 1천2백비25만kw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정상시에는 1천1백만kw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피크타임 때 추가로 소요되는 전력을 북한의 수력에 의해 우리가 공급받을 경우 상당한 규모의 설비투자를 줄일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1백kw용량의 원자력발전소를 1기 세울경우 건설비가 1조6천억원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가 2백만kw의 설비를 줄일수 있으면 3조2천억원을 절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측도 한때는 전력이 풍부해 중국에까지 수출했으나 최근에는 전력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수풍발전소(70만kw)보다 규모가 큰 태천수력(80만kw)과 5공 시절 대응댐 건설 소동을 벌이게 했던 금강산 수력발전소 건설을 서두르고있어 평상시에는 기저설비가 풍부한 우리측이 전력을 충분히 공급해줄 수 있다.

<단전일지 보관>
○…남북한의 전력교류가 이뤄질 경우 끊어졌던 「핏줄」이 다시 이어진다는 상징적 의미도 적지 않다.
해방직후 우리나라의 발전시설용량은 1백72만kw수준. 남한에는 19만8천kw밖에 없었고 대부분 북한에 편재돼 있었다.
이에따라 우리측은 평양∼수색, 금강산∼왕십리 등의 송전선을 통해 10만kw를 북한으로부터 공급받았으나 북한측은 남북분단이 기정 사실화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이 구체화되자 1948년 5월14일 낮12시를 기해 일방적으로 단전해버리고 말았다.
당시 한전의 전신인 조선전업주식회사 상황실에서 당직근무를 하고있었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신기조 사장(66·당시 조선전업 급전과장)에 따르면 이날아침 북한측으로부터 전력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와 당시 윤일중 사장(작고)이 통사정을 했으나 결국 우리측의 요청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사장은 이때 상황일지에 『5월14일 낮12시. 이북에서 각 송전선 차단함. 원만한 해결이 있기 전까지는 송전 불능하다』라고 적어두었으며 이 일지는 그대로 보관, 현재 한전의 지하급 전 사령실에 영구보존하고 있다.
신사장은 『북한이 전력공급을 중단한 이후 거의 가동치 않고 있었던 화력발전소를 다시 손질해 가동할 때까지 몇개월동안 비상등만 켜두었으며 미군의 발전선까지 동원해 해안에서 육지로 전력을 공급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신사장은 그후 한전 화력건설부장·부사장 등을 거치는 동안 전력역사의 산 증인이 되었으며 지난달17일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했다.
신사장은 『한때는 서로 오가며 술도 받아주고 했던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단전조치를 취해 한없이 야속했으나 이제는 서로 끊어진 「핏즐」을 다시 이어야할 때』라고 말했다. <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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