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납치" 소리에 5000만원 준비…전달 직전 만난 ‘순찰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엄마, 5000만원 있어야 날 풀어준대.”

“어머니, 전화 목소리 딸로 믿어” #20대 외국인 전달책 현행범 검거

23일 오전 11시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딸의 목소리. 어머니의 눈 앞은 캄캄해졌다. 남편(74)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부부는 전화를 걸어 자신의 딸을 바꿔준 남성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집 근처인 서울 동작구의 한 은행을 찾은 부부는 5000만원을 수표로 받았다. 하지만 “수표는 안 된다”는 남성의 답이 돌아왔다.

부부는 그 수표를 들고 또 다른 은행 지점으로 갔다. 결국 5만원과 1만원권 지폐 묶음을 섞어 5000만원을 찾았다.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근처의 주택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 사이 부부는 딸 휴대전화로 한 차례 연락도 했다. 통화가 되질 않았다. 마음이 더 조여들었다. 딸을 납치했다는 남성에게서 끊임없이 전화가 오는 바람에 더 이상 통화 시도를 할 수도 없었다.

주택가에 들어서니, 20대로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보이질 않았다.

“내 딸 데려와야 이 돈 줄 수 있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남편은 얘기했다. 그때 좁은 주택가 골목 멀리 순찰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남편은 손을 들어 급히 순찰차를 세웠다.

“딸이 사채를 많이 써서 납치 감금돼 있다고 해요.”

다급한 목소리에 순찰차에 타고 있던 서울동작경찰서 소속 이은성(53)·김대영(50) 경위는 ‘보이스 피싱’이라고 직감했다. 이 경위는 급히 차에서 내렸다.

“저 사람에게 돈을 주기로 했어요.” 부부가 서 있는 방향으로 한 20대 남성이 걸어 내려왔다. 그는 태연한 척 전화 통화를 했다.

“이리 와봐요.”

이 경위는 자연스레 도주할 통로가 없는 연립주택 주차장 입구로 남성을 몰았다. 이 남성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5000만원이 지켜지는 순간이었다.

사건이 마무리 될 때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있어서 휴대전화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 전까지 부모는 전화기 너머 여성을 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경찰은 현재 말레이시아인인 전달책(23)에 대해 조사를 했고, 나머지 일당도 추적하고 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