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잠자리 덮쳐 인명피해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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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진으로 인해 부상당한 족자카르타의 한 주민이 28일 병원 주차장 바닥에 누워 있다(사진위). 지진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이 27일 병원 앞에 임시로 차려진 텐트 속에서 링거를 맞고 있다. [족자카르타 AFP=연합뉴스]

28일 밤, 인구 150만 명의 관광지 족자카르타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시내의 크고 작은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이틀째 계속된 정전으로 시내 광고판과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곳곳에선 군경과 시민들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고 건물더미 밑에 깔린 생존자들을 찾아내 구조하는 작업을 새벽까지 벌였다. 상당수의 도로와 다리가 파괴돼 인명 구조와 부상자들의 수송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발표한 사망자는 지금까지 4600여 명. 부상자만 1만여 명에 달한다. 최악의 피해가 난 지역은 진앙과 가장 인접한 반툴로, 전체 건물의 80%가 파괴됐고 사망자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등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 도심 바테스다 병원에는 1500여 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다. 4층짜리 병원의 병실과 응급실은 물론 대기실과 로비에까지 환자들이 누워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따금 들리는 환자들의 신음 소리와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인의 울음 소리, 바닥에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은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환자들은 병원 건물 앞에 설치된 텐트에 누워 응급치료를 받았다. 병원 안에 들어오지 못한 부상자들은 밤새 병원 밖 땅바닥에서 보냈다.

◆ 마취약 없어 그냥 수술=병원의 한 의사는 "의사와 장비는 물론 항생제와 진통제 같은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해 마취 없이 찢어진 살을 꿰매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환자들은 지금의 고통보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2차 재앙에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다리가 부러진 수바르조(70)는 "지진 다음에 강력한 해일이 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몇 주째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근처 므라피 화산까지 폭발하는 날엔 모든 게 끝장"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을 환태평양 화산대 재앙의 하나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04년 12월 남아시아의 쓰나미와 95년 일본 고베대지진 등도 모두 같은 화산대에 속해 있다. 하지만 리히터 규모 6.2의 강도를 감안하면 다른 지역보다 희생자 수가 월등히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큰 인명 피해의 원인을 진앙이 인구 밀접지역에서 매우 인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앙은 인도네시아 유명 관광지인 족자카르타에서 불과 2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족자카르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은 여타 인도네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낙후된 구조물이었던 것도 피해 규모를 크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내진 설계를 한 일본이나 서방 선진국과 달리 이 정도의 가옥들은 리히터 규모 6 이상의 지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자고 있는 시간에 지진이 발생한 것도 인명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희생자들은 "잠에서 채 깨지 않은 상황에서 진동을 느꼈고, 곧바로 건물 파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고 말했다.

족자카르타=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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