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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부동산 급랭, 트럼프에 노출된 중국의 급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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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시의 우중구(吳中區)는 물의 도시입니다. 우중구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월나라의 발상지로서 강남문화의 모태인 태호(太湖)를 끼고 있습니다. 태호 수역의 3/5이 우중구에 속해 있고 태호 주변 13개 명승지 가운데 6개가 우중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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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보다 작지만 금계호·남석호 등 중급 호수와 호수들을 잇는 수계가 발달한 행정구역입니다. 중국인들이 집을 지을 때 좋아하는 물을 끼고 있고 풍광이 수려해 우중구의 택지는 시장에 나올 때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지방정부 살림밑천 토지경매 유찰 도미노 #시장 거품 인식 맞물려 자금조달도 난항

우중구의 태호 주변 아파트 분양 홍보 [사진 포커스닷컴]

우중구의 태호 주변 아파트 분양 홍보 [사진 포커스닷컴]

그랬던 우중구 택지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16일 쑤저우시 우중구의 17만 평방미터 짜리 두 건의 택지 경매가 유찰됐습니다. 입찰가 밑으로 써내 유찰된 게 아니라 아무도 입찰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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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주택지로 각광받던 쑤저우가 이 모양인데 다른 도시는 어떠겠습니까. 요즘 상하이·허페이·우시·쉬저우 등 1~3선 도시의 토지 경매장 풍경이 별반 차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입찰 실종입니다. 4선 도시들에선 일찌감치 유찰 도미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지경매 유찰 807건, 지난해 비해 7.3배

중국지수연구원이 낸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말까지 토지 유찰 건수가 807건. 유찰 면적이 7954만 평방미터(7.9㎢)로 강남구와 서초구를 합한 면적에 약간 못 미칩니다. 지난해 동기 대비 7.3배에 달합니다.

둥우증권(东吴证券) 애널리스트는 물건만 나오면 싹쓸이하던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과열지역을 중심으로 선분양을 제한하는 바람에 분양만 하면 돈이 들어와 은행 대출 갚고 남은 돈으로 새로운 시행 사업을 하던 개발 공식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금융기관이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면서 추가 대출도 용이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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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1~9월 중국의 20개 대형 부동산개발업체가 낙찰받은 토지 면적은 220㎢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9% 하락했다고 합니다. 개발업체들이 자금난에 직면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중국의 지난 20년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주력 견인차였습니다. 특히 지방정부는 50~70년 임대 형식으로 땅을 경매 시장에 내놔 재정수입을 얻었습니다. 땅이 없으면 산 몇 개를 깎거나 바다를 메워 경매 시장을 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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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의 별도 지원이 없어 지방재정은 마르고 닳도록 (임대형식으로) 땅을 팔아 해결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상승기에는 시장 참여자 모두가 잔칫집입니다. 문제는 가격이 떨어질 때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면서 증시가 직격탄을 맞은 데 이어 부동산 시장도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지방정부의 재정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올들어 중국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선 3대 회색코뿔소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회색코뿔소는 느닷없이 불쑥 터져나온 위험이 아니라 달고 사는 만성 질환처럼 새로울 게 없는 누구나 다 알고 인식하고 있는 리스크라는 의미입니다.

중국 경제의 시그널이 심상치 않습니다.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동산 거품·기업부채·그림자 금융을 이른바 3대 회색코뿔소라고 부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부채 비율은 168% 입니다. 미국(72%)이나 유럽(105%)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도 너무 빠른 게 문제로 지적됩니다.

부동산 부문도 2017년 기준 재고를 모두 소진하려면 8년이 걸릴 정도로 과잉공급된 상태입니다. 2014년에는 4년이었다는 점에서 3년간 얼마나 빠르게 늘어났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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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의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금융도 2011년 GDP의 29.6%에서 2017년 80%까지 늘어났다. 이마저도 그림자금융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집계됐는지 의문스러운 지경입니다.

지방정부의 부채도 골치덩어리입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레이팅은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지방정부의 숨은 부채가 30조~40조 위안으로 추정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공개한 지난해말 지방정부 부채 규모는 16조4700억 위안이었죠.

숨겨진 부채가 이렇게 많다는 겁니다. 추정치를 기준으로 보면 공공부채는 GDP의 60%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당국이 발표한 36.2%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이렇게 격차가 생긴 것은 1994년 시행한 분세제도(分稅制度)에서 비롯됐습니다. 중앙정부는 지방경제 관리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관했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든 능력껏 균형재정은 유지하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능력껏입니다. 당시 지방정부가 무슨 세원이 있다고 알아서 살림을 꾸릴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처럼 중국 곳곳에 기업이 들어서 법인세를 내주면 몰라도 그때만 해도 까마득한 얘기였습니다. 지방정부는 균형재정이라는 선을 넘지 않는 대신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산하기관을 두고 땅장사에 나섭니다.

일종의 특수목적회사인 지방정부투자기관(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s)을 세워 우회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인프라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땅을 팔고 세금도 들어오니 지방마다 부동산 광풍이 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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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유령도시가 50개씩 지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주체가 LGFV입니다. 우회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상 LGFV의 부채는 장부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숨겨진 부채가 된 겁니다.

이렇게 부채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지방정부 재정상황이 불안한 상황인데 주수입원인 부동산 경매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 지방정부의 뒷목이 뻗뻗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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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보고서가 "중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지방정부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입니다.

환율 불안정이 심화되고 증시가 요동치고 부동산 시장도 휘청거리는 와중에 무역전쟁의 포연은 짙어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급소를 노출한 중국 경제를 마음껏 두들기고 있는 배경입니다.

국유기업(금융회사 제외한 일반기업) 부채도 위험 수위입니다.

중국 국무원(행정부)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에 한 보고가 나왔습니다. 국유 기업 자산 현황인데요. 여기서 드러난 국유기업의 부채 규모가 입을 다물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총 118조5000억위안(1경9400조원)으로 13조4572억달러(약 1경5300조원, IMF 기준 2018년)인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3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중국 정부가 국유 기업의 부채 현황을 전인대에 보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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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의존도 특히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중국 경제 상황은 늘 주시해야 합니다. 무역전쟁 이후 안개가 더욱 짙어지는 상황이라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3대 회색코뿔소 가운데 어디 하나라도 구멍이 생기면 우리 경제에도 대형 악재입니다. 무역전쟁의 후폭풍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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