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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우리은행 행원선발 합숙은 기상천외 서바이벌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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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은행 “2006년 상반기 신입행원 합숙면접”에서 응시자들이 24일 오후 집단과제 테스트 중 하나인 ‘1000조각 퍼즐 맞추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날 오전 2시 강제 소등 전까지 퍼즐 맞추기에 몰두했지만 한 팀도 1000조각 퍼즐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테스트의 목적은 ‘완성’이 아니라 ‘협동’과 ‘위기관리’ 자세의 평가였다.

#1. 양복 정장을 갖춰 입고 가슴에 큼지막한 수험표를 단 20대들이 1000조각짜리 퍼즐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놀이거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들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형광등 불빛이 환한 사무실 책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 "지금부터 친구 한 명에게 전화해 자신에 대한 평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달라고 하세요. 최소한 10명 이상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야 합니다." 감독의 '황당한' 주문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20대들이 이내 전화를 건다. "○○야.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야 해…."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안성 연수원에서 열린 우리은행 '2006년 상반기 신입행원 공채 합숙면접' 장면들이다.

시중은행의 상반기 취업시즌이 한창이다.

은행마다 우수한 '뱅커'를 뽑기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으로 입사시험을 마련하고 있다. '서류전형-필기-면접' 형태의 전형적인 입사시험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이 같은 과정으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인재를 뽑는데 부적합하다는 판단이다.

24일부터 시작된 우리은행 합숙면접의 목표는 기본적인 영업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다. 돈을 끌어올 기초 지식과 자질, 상황 돌파력은 물론 주변에 돈많은 사람이 많은 지까지 속속들이 파헤친다. 첫날엔 '서바이벌 시사퀴즈' '그룹토론' '주제발표' '금융상품 브로셔 만들기' '휴대전화를 이용한 인적 네트워크 능력 평가' '퍼즐 조립' '퍼포먼스 준비'와 같은 많은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

(1) “○○야, 문자메시지 빨리 보내.” 휴대전화를 이용한 사회성 테스트. 감독의 주문에 지원자들이 분주하게 전화를 걸고 있다.

(2) ‘○○○는 저의 자랑스런 아들입니다.’ 친구로부터 문자메시지 받기 테스트지만, 한 지원자가 친구 대신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아 적고 있다.

(3) 은행 홍보 브로셔 제작. 난생 처음 만들어보는 홍보물에 지원자들의 ‘설레임’과 ‘희망’이 담겼다.

응시생 정 모씨는 "내 모습이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기는 처음"이라면서도 "이처럼 긴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의 검증을 하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둘째날의 일정도 빡빡하기는 매한가지. 오전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지만 다섯 시간만인 오전 7시에 기상이다. '응시생 간 상호면접' '활동성 면접' '이미지 메이킹' '팀 퍼포먼스 공연' 등이 오후 11시까지 이어진다. 마치 세미나와 TV오락프로그램, 대학MT를 합쳐놓은 듯한 프로그램이다.

실무면접 총괄 책임을 맡은 이상철 차장은 "지적능력은 물론 사회성.인성.위기대처능력.협동성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증이나 어학능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은행원으로서 개인영업.기업영업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의 2006년 상반기 신입행원 경쟁률은 약 50대1. 당초 1만48명의 지원자 중에는 공인회계사만 120명이 넘었지만 단 6명만이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응시생 중 변호사도 있었지만 역시 초반에 고배를 마셨야 했다. 두차례로 나눈 2박3일의 이번 합숙면접에는 필기시험에 합격한 430명이 응시했다. 이들 중 약 200명이 임원면접을 거쳐 다음달 22일 최종 합격된다.

글.사진 안성=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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