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확인에 그친「검찰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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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검찰의 현대그룹노조원 테러사건수사는 1일 김용갑 울산경찰서 전 정보과장의 구속과 권중수 전 경찰서장의 불구속 입건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변진우 부산지검 울산지청장은 이날 이들에 대한신법 처리결과를 발표하면서 더 이상의 추가구속자나 소환자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회사측에서는 한유동 현대엔진전무(51)와 현대중공업대의원 김남소씨(42)등 행동대원 11명, 외부인으로는 재미교포 이윤섭씨(38)와 방어진 조기축구회장 김춘시씨(43)등 테러지휘자 2명, 경찰쪽은 김전정보과장을 포함해 모두 15명이며 불구속 입건자는 권전서장 등 모두 37명이다.
검찰은 지난달19일 숱한 의혹을 산 이번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전담반까지 구성, 2주 이상 수사를 폈으나 ▲테러에는 노조대의원외에 조직폭력배도 가담됐으며 ▲경찰이 사건발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사건직후에는 이같은 사실을 숨기려했다는 등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소문을 확인하는 정도로 수사를 끝마쳤다.
따라서 한전무 배후에는 누가 있으며, 구속된 사람 외에 범행에 동원된 사람들은 누구이며, 경찰의 개입은 어느 선까지인가 등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여론에 끌려 다니는 형식적 수사」「미리 설정된 한계선 내에서의 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회사관련부문=검찰수사로도 이번 사건은 한유동이라는 개인이 회사에 대한 과잉충성심에서 이윤섭이라는 노조파괴전문가를 동원, 김남소씨 등 동조노조원들을 끌어 모아 석남 산장과 「현해협」사무실의 강경파근로자들을 습격토록 한 것이라는 경찰수사결과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김춘시라는 「폭력배 동원책」을 찾아낸 것이 진전이라면 진전이지만 김씨에게 폭력배동원을 지시한 인물은 밝혀내지 못했다.
김형벽 현대엔진사장, 도영회 현대건설부사장겸 인력개발원장, 신익현 현대중공업상무 등을 소환 조사하기는 했으나 관련사실을 못밝혀낸채 「이들이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한다」는 이유로 2시간만에 돌려보냈다.
검찰은 이밖에 현대중공업 경비간부 2명이 석남산장 테러때 현장에 있었던 사실과 사건직후 경찰기동대원들의 간부식사제공사실 등과 관련해서도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공권력 개입부분=검찰은 이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사전공모·축소 또는 방조는 없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김용갑 전 정보과장 등 일부경찰관의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의 혐의는 인정하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김 전 정보과장이 사건당일 상황실장으로서 상북 지서에서 검문에 걸린 범행차량을 판단미스로 그대로 통과시켰고, 그후 출동시킨 형사기동대에 명확한 임무를 부여치 않아 범인들의 조기검거에 실패했으며, 사건직후 책임을 회피키 위해 김상구 지서장에게 검문사실을 숨기도록 지시했다는 것 등이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에 해당된다고 보고 김 전 정보과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그러나 권중수 전 서장은 사건 다음날 상황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서야 사건을 알았으며 김 지서장도 상부에 보고하는 등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사법적인 처벌은 어렵다고 보고있다.
검찰은 이밖에 경남도경 김태순 수사과장도 소환해 형사기동대를 사건에 전후해 파견한 경위 등에 대해 수사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은 발견치 못했다고 밝혔다.
◇의문점=한유동 전무 등이 테러를 저지른 목격 등이 분명치 않다. 한전무 개인차원으로 과연 이같이 엄청난 일을 계획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인지, 이윤섭씨 등은 과연 아무런 보상의 약속 없이 사후형사처벌이 불을 보듯 뻔한 범죄행위를 선뜻 저지를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정몽준 회장이 사건 이틀전 울산에 내려와 중역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사건다음날 상경한 점, 종합기획실소속이었던 한전무가 4일자로 현대엔진전무로 소급 발령된 점, 도 부사장이 5일 울산으로 내려가 이윤섭씨와 자주 접촉했으며 사건 다음날인 8일 김남소씨 등 8명이 자수하기 전 만나 한참동안 밀담을 나눈 사실 등은 이와 관련해 의혹이 남는 대목들이다.
또 구속된 김 전 정보과장이 사건 당일밤 독자적으로 테러범 통과 등의 지시를 내린 뒤 일이 터지자 직속상관인 서장에게 보고했다는 것도 경찰조직의 속성상 납득키 어려다. <울산=김동균·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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