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에 "새 불씨"던진「광주 미문화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문화원은 보는 광주시민의 시각은 엇갈린다. 그러나 다른 곳보다는 부정적 시각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5·18」이라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특수한 지역분위기가 여론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재야·학생·청년층에서는 특히 비판적 입장이 강하지만 재야에서도 사안의 미묘한 성격을 지적, 「이성적 대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유신이래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온 광주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이기홍씨(51)는 『미문화원은 절대 폐쇄돼선 안된다』고 단언한다.
미국이 대한정책에 과오가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전제한 이변호사는 『그러나 대한민국의 원대한 미래를 내다보고 한미관계를 풀어나가야 하며 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제와 최근 활발해진 남북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외해 미국과의 결속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미문화원이 한미관계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며 현재대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교적 중립적 입장인 조선대 오수열 교수(42)는 『사회과학을 하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지방도시인 광주의 미문화원은 많은 도움을 주는 최신자료와 정보공급처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광주에서 미문화원이 문을 닫음으로써 이러한 지식·정보확대의 기회와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오교수는 문화원이 대학생들의 공격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문화원이 순수한 문화 교류시설이 아니라 광주학살을 방조·묵인한 미 제국주의의 표상이며 특히 최근에는 경제침략주의의 상징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미국은 하루빨리 이러한 인상을 불식하도록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오교수는 최근 우리정부가 대북 교류를 활발히 벌여 공산권과도 상호문호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 기왕에 있는 미문화원을 폐쇄하자고까지 주장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 특히 운동권의 시각과 논리는 사뭇 다르다.
조선대 총학생회장 장진성군(24·기계공학)은 학생들이 단순한 반미감정에서 미문화원을 습격하고 폐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문화원」을 침략적인 대외정책 도구로 썼기 때문에 축출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재를 지원하고 「5·18」을 배후 조종한 미국은 사회의 민주화, 민족의 통일에 방해세력이며 그래서 문화원을 「미제축출」투쟁의 1차적 공격목표로 삼고있다는 외곬의 강경 논리다.
국민운동 전남본부 위성삼 총무부장(35)은 『미국이 한국에 펼치고 있는 경제·문화활동 등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문화원을 통해 수집해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이러한 침탈목적의 문화원을 존속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박선배씨(39·광주시 남동 정선양복점대표)는 『한푼의 임대료도 물지 않고 황금같은 요지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정보수집활동이나 해온 미문화원을 당장 폐쇄해야한다』고 소박한(?) 반감을 토로했다.
광주YWCA 서경숙 간사(37)는 미측이 직원 등의 안전이 문제될만큼 대학생들의 동향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면 일단은 폐쇄하는 것도 사태수습의 현실적 방법이라는 의견.
서씨는 문화원을 습격하고 폐쇄를 요구하는 대학생 등의 시위가 잦아지자 존폐를 거론하는 미문화원측의 자세는 현명하지 못하며 이 기회에 한국내 미문화원 운영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하는 것이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위해 바람직스럽다고 했다.
중학교 교사인 박상남씨(40)는 이와 관련 정부나 미문화원측이 문화원존폐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것도 반미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서의 문화원문제는 문화원 그 자체가 아니라 광주항쟁 문제의 다른 표출인 셈이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강성분위기와는 또 달리 말없는 다수의 여론은 미국과 정부측의 광주문제에 대한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분위기다. <광주=위성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