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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 징역 2년, 그리고 집행유예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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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① 대한민국 존재와 존립의 영속성 부정="피고인은 해방 당시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공산주의.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게 역사적 필연이고, 북한이 민족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남한은 민족 정통성이 없고, 민족통일을 이루려면 주체사상이 길잡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은 한 달 내에, 1만 명 미만의 희생자만 내고 끝났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고 있다. 이는 1948년 건국돼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존재.존립의 영속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다."

② 대남 적화혁명론 동조="피고인은 미제 식민지 지배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하면서 민중의 힘을 조직.동원해 자주적 통일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동하는 북한의 대남 적화혁명론에 동조하고 있다."

③ 선동적 방법으로 북한에 동조="피고인은 대한민국.미국에 대해선 '불법성 및 위배' '원수' '전쟁광' '주적' '학살 책임자' 등으로, 북한은 '민족 정통성' 등으로 표현한다. 이는 학자의 입장에서 냉철하고 합리적인 학문적 논의를 이끌기 위한 화두를 던졌다고 볼 수 없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가할 위험성이 있다."

④ 학문의 자유도 법률로 제한 가능="학문의 자유에서 내심의 영역인 연구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지만 연구결과를 외적 활동으로 표현하는 자유는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다."

◆ 실형(징역.금고) 선고하지 않는 이유

① 포용 폭 넓어져="민주사회에서 어떤 주장이나 표현의 해악을 시정하는 1차적 기능은 사상의 경쟁시장에서 이뤄져야 하고, 국가 개입은 다른 사상이나 표현에 의해 그 해악을 해소할 수 없거나 다른 사상이나 표현을 기다리기엔 그 해악이 너무 심대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과 체제경쟁의 우위에서 포용할 수 있는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 피고인의 주장을 건전한 사상의 경쟁시장에서 논의하고 검증한다면 그 해악을 시정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피고인 주장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작아졌다."

② 신분상 불이익="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 자체로도 처벌의 상징성이 있고, 신분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점을 감안했다."

4년8개월 만의 1심 판결

"피고인을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에 처한다. 다만 3년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26호 법정.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진동 판사가 선고를 내리자 법정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법정을 빼곡히 채운 강 교수 지지자, 보수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의 얼굴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자'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주장 등으로 첨예한 이념갈등을 일으켰던 강 교수에게 '유죄'라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강 교수가 '만경대 방명록' 사건으로 2001년 9월 구속기소된 지 4년8개월 만이다. 강 교수는 이날 예정된 재판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법정에 나왔다.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선고 직후 "재판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법은 법이니까 법의 기준에 따라 하는 것이지만 민족사적.사회적 요구, 인류보편사적 원칙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형이 확정될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교원 자격을 박탈하도록 한 사립학교법 제57조에 따라 강 교수는 교수직을 잃게 된다. 또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2년간은 교수로 재임용될 수 없다. 강 교수는 현재 동국대에서 직위 해제된 상태다.

◆ "학문의 자유, 국가안전 위해 제한 가능"=김 판사는 강 교수의 각종 발언과 기고문들이 북한 측 주장에 동조해 자유민주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학문의 자유'가 강 교수의 친북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기본권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냉전적 상황이 조성해 놓은 성역을 허물기 위해 저술활동을 했다"는 강 교수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김 판사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상은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에서 검증되는 게 바람직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검증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실정법 위반과 학문의 자유 사이에서 애를 쓴 느낌이지만 친북세력이 엄존하고 반미 활동이 확산되는 현실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남북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거스른 치욕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 보수단체, 강 교수 지지자들 몸싸움=이날 선고 후 강 교수 지지자 100여 명은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에서 집회를 열었다. '사상.표현의 자유 보장하라' '견해 표명은 사법 대상이 아니다'라고 적힌 10여 개의 피켓을 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 등 10여 명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집회를 해도 되는 것이냐"며 맞서 20여 분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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