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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던 한화의 '불꽃야구', 김태균이 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김태균(36)의 한 방이 꺼져가던 '불꽃 야구'를 되살렸다.

1,2차전 선발 제외됐지만 3차전 결승 2루타 #평소와 달리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스윙 #한화, 베테랑 활약으로 4028일 만에 PS 승리

한화 이글스는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준PO·5전3승제) 3차전에서 3-3 동점이던 9회 초 1사 1루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대형 2루타를 터뜨려 4-3 승리를 이끌었다. 한화가 포스트시즌에서 이긴 건 2007년 10월 12일 삼성과의 준PO 3차전에서 승리한 이후 4028일(11년 20일) 만이다.

한화 김태균이 22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9회 결승타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화 김태균이 22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9회 결승타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차전을 내줘 벼랑 끝에 몰렸던 한화는 경기 막판 김태균의 천금 같은 역전타에 힘입어 기사회생했다. 양 팀은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4차전을 치른다. 4차전에서 한화는 박주홍, 넥센은 이승호를 선발투수로 내세운다.

한화의 해결사 김태균은 올 시즌 부상이 겹치면서 7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타율 0.315, 홈런 10개를 기록했지만, 그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2011년 한화 입단 후 줄곧 팀의 간판타자로 활약한 김태균은 급기야 준PO 1·2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타격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젊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려는 한용덕 감독의 의지를 말해주는 전략이었다.

김태균은 1차전 5회 2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왔다. 그러나 3구삼진을 당하며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2차전에서는 대타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준PO 두 경기를 모두 내주자 한용덕 감독은 라인업을 흔들었다. 4번·지명타자를 맡았던 이성열은 그대로 4번으로 나왔지만, 좌익수로 나왔다. 대신 좌익수로 내보냈던 최진행을 빼고 김태균을 5번·지명타자로 내보냈다.

위기감과 압박감이 한화를 짓누르는 시점에 김태균은 변신을 시도했다. 0-0이던 2회 초 첫 타석에서 넥센 선발투수 브리검의 초구를 때려 좌전안타를 만들었다. 이후 두 타석에서 범타와 삼진에 그쳤지만, 김태균은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좀처럼 초구를 공략하지 않는 김태균은 공격 패턴을 바꾸며 상대를 압박한 것이다.

김태균은 9회 초에도 바뀐 투수 이보근의 초구를 노려쳐 결승타를 날렸다. 총알처럼 뻗은 타구는 우중간을 시원하게 갈랐고, 1루 주자 이성열은 사력을 다해 2루와 3루를 거쳐 홈까지 내달렸다. 2루에 선 김태균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 보인 웃음이었다. 결승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를 때린 김태균은 준PO 3차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기세를 올린 한화는 막판 위기도 잘 막았다. 8회 1사부터 마운드에 오른 한화 클로저 정우람은 9회 1사 후 서건창에게 안타를 막았지만,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화는 2008년 이후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그동안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다. 올해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게 무려 11년 만이다.

그러나 준PO 1차전에서 잔루 14개, 2차전에서 잔루 10개를 기록할 만큼 경기 운영이 매끄럽지 못했다. 베테랑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포스트시즌 경험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하마터면 3경기 만에 가을 잔치를 끝낼 뻔했으나 베테랑 김태균과 마무리 정우람이 '9회 드라마'를 완성했다.

한화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 역투하고 있다. 8회 1사부터 마운드에 오른 정우람은 승리투수가 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화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 역투하고 있다. 8회 1사부터 마운드에 오른 정우람은 승리투수가 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화는 이날 세 차례나 보내기 번트에 실패했을 만큼 짜임새가 좋지 못했다. 이길 수 있는 찬스를 여러 번 만들고도 경기 중반까지 리드를 확실히 잡지 못했다.

한화는 0-0이던 2회 초 선두타자 이성열의 볼넷과 김태균·하주석의 연속안타로 1-0으로 앞섰다. 이어진 무사 1·3루에서 최재훈의 적시타가 터져 2-0을 만들었다. 무사 1·2루 찬스가 이어지면서 한화는 '빅이닝(한 회에 3점 이상을 얻는 것)'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회성이 때린 땅볼이 3루 앞으로 굴렀다. 넥센 3루수 김민성이 공을 잡자마자 3루를 밟아 원아웃을 만들었고, 2루수 송성문과 1루수 박병호까지 이어지는 연결로 순식간에 삼중살(포스트시즌 역대 세 번째)을 당했다. 대량득점 찬스를 한순간에 날린 한화의 공격은 5회 초까지 무득점에 그쳤다.

넥센은 한화 선발 장민재의 예리한 제구에 막혔다. 최고 시속이 140㎞(평균 136㎞)에 불과한 장민재의 공은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찔렀다. 4회 말까지 2안타 무득점에 그친 넥센 타선은 장민재 투구의 회전력이 떨어진 5회 말 찬스를 잡았다.

선두타자 김규민이 볼넷을 골라 나가자 넥센 장정석 감독은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1점만 따라붙으면 경기 막판 상위 타선이 추가 득점을 올릴 거라는 계산이었다. 김재현의 번트로 만든 1사 2루에서 1번 타자 서건창이 적시 2루타를 때렸다. 3번 타자 제리 샌즈는 바뀐 투수 이태양으로부터 2-2를 만드는 동점타를 때렸다.

한화는 6회 초 호잉의 솔로홈런이 터져 3-2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리드를 잠시도 지키지 못하고 6회 말 이태양의 송구 실책과 김범수의 폭투로 3-3 동점을 허용했다. 흐름이 넥센으로 거의 넘어간 상황에서 한화를 상징하는 '불꽃 야구'가 마지막에야 살아났다.

김식·김효경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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