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0일> 컴퓨터 먹통에 전화기까지 불통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메일을 보낸 후 이 지역의 기상정보를 얻기 위해 메일을 받던 도중 이상한 메일이 들어와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됐다.

게다가 기상이변으로 매일 눈이나 비가 쏟아져 등반이 늦어지자 엄홍길대장은 박현수,정찬일 대원에게 식량 구입및 노트북 수리를 하기 위해 남체로 내려보냈다.

원정대 소식도 남체로 내려와서 지난 9일부터의 일정을 보내겐 된 것이다.

원정대는 지난 9일 휴식을 취하고 10일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박주훈,홍순덕,황선덕,정찬일 4명의 대원은 캠프2 설치를 위해 아침 일찍 베이스캠프를 출발하여 캠프1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추석날인 11일 4명의 대원은 캠프1에서 차려놓은 제수도 없이 동쪽을 향해 조상님께 절만 올린 후 캠프2 설치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눈 상태가 좋지 않아 작업속도는 생각보다도 굉장히 늦어졌다. 이날 4명의 대원은 6천m 지점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캠프1으로 내려갔다. 다음날인 13일 박주훈,홍순덕,정찬일 3명의 대원이 일찍 전날 짐을 내려놓은 6천m지점으로 이동해 캠프3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로프를 깔았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작업을 하려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한발짝 한발짝 내딛는 발걸음에 곧 넘어갈 것처럼 숨이 가빴다. 특히 등반도중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사태는 대원들의 사기 또한 저하시킨다. 공포의 연속이다. 황선덕 대원과 셀파 2명은 짐을 내려놓았던 지점까지 올라와 캠프2(6천m)를 만들고 하산했다.

캠프 2에서 작업을 할 때 날씨는 굉장히 더웠다. 이때문에 눈사태가 자주 일어나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박주훈 대원은 루트작업을 마치고 내려오다 눈사태가 덮쳐 하마터면 큰 사고(?)로 연결될 뻔 하기도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면했지만 약간의 장비를 분실했다. 그래도 ‘그만인 것이 다행’이라며 대원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이처럼 기상이 악화되자 오후 2시까지 작업을 하던 대원들은 캠프2로 내려와서 내일을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자는동안에도 계속해서 눈이 퍼 붓는바람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도 계속해서 눈은 그치질 않고 내리는 바람에 캠프1, 캠프2에 있던 전대원과 셀파에게 하산명령이 떨어졌다.

그후로 도통 날씨를 짐작할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이 눈이 오다가도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다가도 눈이 오는 악천후의 연속이었다.

계속해서 닷새동안 베이스에서 머물며 마냥 기다리다 지친 엄홍길 대장은 식량구입 및 컴퓨터 수리, 위성전화 수리 등의 임무를 위해 박현수, 정찬일 대원을 남체까지 내려보냈다. 나머지 대원은 베이스캠프에서 날씨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노트북은 서울로 전화해 알아보니 이번 원정을 위해 구입한 신형인데 하드 디스크가 고장나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로케샤르 원정대가 있는 베이스캠프는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어 위성전화가 위성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전화기도 거의 불통상태에 있다.

며칠만에 내려온 문명의 세계(?)지만 이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두 대원은 다시 베이스캠프로 올라가야 한다. 당분간 한국에 있는 동료 선후배,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이곳 소식을 자주 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대원 모두 컨디션과 체력이 좋은 편이어서 원정대원들을 염려해 주는 모든 분들에게 조만간 좋은 소식을 보내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Merry 추석’로체샤르에서 원정대 일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