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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빌라 가진 적 있다고 신혼청약 안된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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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중랑구에서 전세로 사는 결혼 6년 차 이모(39)씨는 신혼 기간에 주택 소유 이력이 있으면 ‘신혼부부 특별공급’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2013년 신혼집으로 강동구 성내동의 전용 32㎡짜리 빌라를 1억5000만원에 산 적이 있어서다. 그는 “전셋값과 20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대출 끼고 산 뒤 2년 후 팔았다”며 “5년 전 이력 때문에 갑자기 자격을 박탈한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20㎡ 초과 주택은 안 돼 #“10억 전세는 허용” 불만 목소리 #국토부 “의견 수렴 중 … 바뀔 수도”

정부가 아파트 청약제도 손질에 나서면서 일부 신혼부부와 노부모 부양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입법 예고한 ‘주택공급 규칙’ 개정안이 11월 말 시행되면 청약 기회가 줄 것이란 우려에서다.

가장 불만이 큰 규제는 신혼 기간에 주택 소유 경험이 있으면 특별공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이다. 특별공급은 분양 물량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내 신혼부부·다자녀 가구 등이 청약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신혼’ 범위는 결혼 7년 이내(재혼 포함) 또는 예비부부다. 그동안 입주자 모집공고일 기준으로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면 청약자격이 주어졌지만, 앞으로는 청약 시점에 주택이 없더라도 신혼 기간에 집을 샀다면 자격이 박탈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며칠 새 ‘신혼부부 특별공급 제외 조치를 철회하라’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한 청원자는 “어머니 명의로 대출이 안 돼 내 명의로 빌라를 샀다가 팔았는데 특별공급을 신청할 수 없다니 억울하다”고 했다. 다른 청원자는 “강남에 10억원 전세를 사는 신혼부부가 경기도에 2억원 미만 빌라를 소유했던 부부보다 청약 기회가 많은 게 정부 정책 방향이냐”고 비꼬았다.

국토부는 주택 소유 이력이 있다 해도 청약 제도상 주택 판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청약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수도권에선 전용 20㎡ 이하 주택을 보유해야 무주택으로 인정받는 식이어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 규모가 작고 아파트 이외 주택이어야 해 대상이 드물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분양 중인 한 아파트 견본주택. 11월 말 이후부터 신혼기간 중 주택 소유 경험이 있으면 특별공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 강서구에서 분양 중인 한 아파트 견본주택. 11월 말 이후부터 신혼기간 중 주택 소유 경험이 있으면 특별공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혼기간 주택 소유 여부는 따지면서 결혼 전 주택을 소유한 이력은 청약자격과 상관없어 형평성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해 황윤언 국토부 주택기금과장은 “정책 타깃이 특별공급을 받기 위해 집을 팔고 청약하려는 이들로, 결혼 전 주택 소유 이력까지 규제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집을 가진 부모를 청약 때 부양가족 가점 산정에서 빼려는 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온다. 지금은 60세 이상 부모가 집을 갖고 있어도 청약자와 3년간 주민등록상 한 가구를 이뤄 살고 있으면 부양가족 점수를 준다. 만점이 84점인 청약 가점제에서 부양가족 점수는 총 35점이다. 부양가족이 1명이면 10점이고 1명이 추가될 때마다 5점씩 올라간다. 자녀 1명, 노부모 2명과 산다면 부양가족 점수는 20점인 셈이다. 노부모와 함께 산다는 권모(42)씨는 “하루아침에 가점 10점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약제도가 갑작스럽게 바뀌면 시장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남수 신한은행 도곡PWM센터 PB팀장은 “청약 때 거주 지역, 주택 유무는 입주자 모집공고일을 기준으로 삼는데 신혼 기간 내 주택 소유 경험으로 특공 자격을 정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을 산 경험이 있더라도 매도한 지 6개월 또는 1년이 지난 신혼부부라면 청약 기회를 열어놓아야 한다”며 “일정 가격 이상 주택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입법 예고 기간인 다음달 21일까지 들어온 의견을 수렴해 결정되고, 최종 내용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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