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충호씨 풀리지 않는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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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테러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5일 테러범 지충호(50)씨 명의로 된 5개의 계좌를 찾아내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지씨는 정부의 생계 지원금이나 갱생보호공단의 취업알선 후원금 등이 입금된 농협통장 외에 4개 이상의 계좌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 카드깡 계좌 여러 개=합수부 측은 지씨의 계좌에서 뭉칫돈이 오간 점은 발견하지 못했고, 실제 사용한 계좌는 2개였다고 밝혔다. 지씨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속칭 '카드깡'(신용카드 불법 할인)용 계좌를 여러 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11월 발급받은 외환카드로 700만원 이상을 사용한 사실에 대해 지씨가 챙긴 금액은 절반 정도고 나머지는 불법 할인업자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카드깡은 신용카드로 허위 매출전표를 끊은 뒤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현금으로 받는 수법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지씨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은 할부로 샀고 매번 연체된 통화료는 친구 도움으로 해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부 관계자는 "지씨가 지인들에게 몇 천~몇 십만원을 얻거나 카드 대납업자로부터 돈을 빌려 신용카드 사용액을 메우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수사결과를 종합해 보면 지씨에게 뒷돈을 준 배후가 없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단독범행으로 몰아가기엔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금융계에 따르면 지씨의 신용등급은 최하다. 최근 6개월 동안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세 번 대출을 시도했다 실패했다. 무허가 대부업체와 같은 비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여러 차례 돈 빌리기도 시도했다. 지인이 빌려준 돈과 카드깡 등으로 생활했다고 한 합수부의 설명과 별도로 지씨가 또 다른 자금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지씨는 수원의 한 유흥주점에 명의를 빌려 주고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카드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합수부도 외환카드 외에 또 다른 신용카드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20여 개의 번호 등 통화내역 조사도 진행 중이다. 합수부는 지씨가 100만원짜리 수표로 카드대금을 낸 사실과 관련, 수표의 출처도 조사할 예정이다.

◆ 수사는 지지부진=합수부가 꾸려진 지 닷새가 지났는데도 수사가 크게 진전되지 않고 있다. 합수부는 21일 발족 당시 사건의 중대성과 민감성을 감안해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씨가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합수부의 탐문수사가 성과를 거두지 못해 공모나 배후 여부를 밝히려는 노력이 겉돌고 있다.

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을 본부장으로 5명의 검사, 10여 명의 검찰수사관, 20여 명의 경찰관 등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데 비해 현재까지 밝혀낸 것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합수부는 지씨 계좌의 개수나 입출금 내역이 크지 않은데도 정확한 출처와 용처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철재.김호정.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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