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장 "야당이 싹쓸이 땐 지방자치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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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지도부가 25일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정동영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조배숙 최고위원, 이용희 고문. 오종택 기자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 주십시오."

5.31 지방선거를 엿새 남겨 놓은 25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중앙당에 모여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선거운동을 일시 중단하면서까지 비상총회를 연 이유는 선거 판세가 너무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이 불리한 판세를 인정하고 공개적인 '읍소' 작전을 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 "헌정 질서 와해 우려"=정동영 의장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100여 명이 참석한 비상총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의원.당직자들은 '싹쓸이를 막아 주십시오'라는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이들은 임종석 의원이 읽은 호소문에서 "벌써부터 '선거를 해보나 마나'라는 말이 나오고, 수도권 단체장 70석 가운데 한나라당이 67~68석을 싹쓸이하고 여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고 공개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전국에서 광역지자체 16곳 중 2곳만 유리하다. 시.군.구 기초지자체 230곳 중에선 고작 20여 곳만 우세할 뿐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견제와 균형'을 호소했다. "지방자치 싹쓸이는 민주헌정 질서의 와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며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도 국민은 (17대 총선에서) 여야 간에 152 대 147의 균형을 맞춰 주셨다"고 했다. 이들은 또 "선거 후 백지상태로 되돌아가 경제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대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가동하겠다"며 "며칠 만이라도 매를 거둬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정 의장은 "이대로 가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전망"이라며 "야당이 전국을 장악하는 국면이 도래한다면 지방자치 11년 역사가 후퇴하는 국면이 오고, 이것은 단지 민주평화개혁세력의 위기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심대한 위기"라고 주장했다.

여당은 대국민 호소가 선거 막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여당의 읍소가 국민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당 내부에서조차 이변을 기대하기보다 자포자기 심정을 토로한다. 부산시장 선대 본부장인 윤원호 의원은 "박근혜 대표 피습 이후 우리당 점퍼를 입은 운동원이 택시를 타면 기사가 '당장 내려라'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대부분의 의원은 지역구 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 "감동 없는 신파극"=야당은 일제히 비판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국민의 마음이 한순간의 읍소와 눈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무 감동도 없는 신파극"(민주당 유종필 대변인), "사실상의 선거 패배 선언이며 졸렬한 구걸 정치"(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 "자업자득이란 점을 먼저 반성해야지 읍소형으로 표를 구걸하는 것은 전근대적 방식"(국민중심당 정진석 원내대표)이란 반응이 나왔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ID 'jack518'은 "자기가 아니면 전부 반평화.반민주.반개혁 세력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동정표를 얻으려는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적었다. 또 "자기는 깨끗하지만 남들은 더럽다는 식"(jaseosw), "아직도 자기들 아니면 다 수구세력으로 보는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worldshine), "선거 때만 그러지 말고 제발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잘 좀 하시오. 서민경제 다 죽어갑니다"(caeciman), "정신 차리려면 싹쓸이보다 더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cjehen)는 의견이 잇따랐다.

김정욱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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