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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첨단 산업 인력난 방치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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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경제는 반도체에 의존하는 불안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그린북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다면서 그나마 ‘수출의 견조한 흐름’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덕분이다. 9월 반도체 수출이 1년 전보다 28.3% 증가하면서 일평균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는 17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며, 이달 하순 실적이 발표되는 SK하이닉스도 시장에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전체 수출의 반도체 비중은 21.2%로 상승했고 올해 상반기 코스피 영업이익에서도 반도체 종목이 37%를 차지했다. 반도체가 휘청대면 증시도, 수출도, 한국 경제도 버티기 힘들다.

모자라는 반도체·AI 등 첨단분야 연구인력 #‘대기업 프레임’ 넘어서 국가 R&D 투입해야

2016년 이후 이어진 반도체 호황 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한 가운데 세계 반도체 수요 1위인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삼성전자 등 우리 대표기업이 기술력에 기반을 둔 초(超)격차를 유지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어제 본지가 보도한 반도체 업계의 연구개발(R&D) 인력난은 매우 우려스럽다. 서울대 반도체 분야 석·박사가 2007년 97명에서 지난해 43명으로 줄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반도체 전공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반도체는 초호황인데 업계는 인력난에 허덕인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내부 인력을 전환 배치해 반도체 인력 수요를 맞추고 있다니, 장비·부품·소재 같은 후방업체의 인력난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의 반도체 R&D 인력이 위축된 것은 돈 잘 버는 대기업까지 왜 예산으로 지원하느냐는 비판 때문에 이 분야 국가 R&D가 줄어든 탓이 크다. 하지만 반도체 관련 국가 R&D 예산은 대부분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중견 장비·소재 업체와 대학으로 간다. 잘못된 ‘대기업 프레임’은 내려야 한다. R&D 자금이 장비·소재 업체로 흘러야 반도체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간다.

대기업만으로는 건강한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로 균형 있게 키워내기 위해서도 다양한 인력 배출이 절실하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인 메모리는 대기업 혼자 할 수 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인 비메모리를 키우려면 중소·중견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핵심 산업의 인력난은 반도체뿐만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축인 인공지능(AI) 분야는 글로벌 기업의 인재 쟁탈전이 치열하다. 해외 학술대회가 열리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 한국의 삼성전자·네이버 등 관련 기업이 저인망식으로 관련 인재를 훑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내에서만 AI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향후 5년간 1만 명 가까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와 AI 분야 인력난을 해결하는 데 정부와 업계가 시급히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학과 교육계도 시대 흐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첨단 분야 인력난이 지속되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