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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향기] 총 앞에서도 "나비" 외친 석주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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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리창나비(Dilipa fenestra takacukai SEOK).수노랑나비(Apatura ulupi morii SEOK).도시처녀나비(Coenonympha koreuja SEOK) 등등.

조선의 나비들에게 '이름(학명)'과 '주소(분포도)'를 찾아주는 데 일생을 헌신했던 석주명. 그는 우리 현대사 초창기의 몇 안 되는 별 중 하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나비 박사'라 부른다.

석주명은 1908년 11월 13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개성 송도고보를 졸업한 그는 26년 3월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업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로 유학길에 올랐고, 졸업 후에는 모교인 송도고보의 생물교사로 부임,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나비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한반도 전역을 훑으며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했다. 송도고보의 학생들에게는 방학만 되면 나비를 200마리씩 채집해 오라는 숙제를 냈다. 석주명은 10년 연구 끝에 1940년 '조선산 나비 총목록'을 통해 일본 학자들이 같은 종인데도 엉터리 학명을 붙여 844종이라고 분류한 한국 나비를 248종으로 최종 분류함으로써 한국 나비의 새로운 분류학 시대를 열었다. 이 책은 한국인의 저서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도서관에 소장됐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처연했다. 50년 9월 말 집중된 서울시내의 폭격으로 국립과학관이 불타는 바람에 그가 20여년간 수집한 그의 분신과도 같은 나비 표본이 모두 한줌의 재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나비들이 모두 불탄 열흘 뒤(50년 10월 6일), 과학관 재건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가던 중 그는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불의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그가 총구를 겨누는 청년들에게 외친 최후의 한마디였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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